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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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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결혼한 새댁이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내놓았다.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던 남편이 역정을 냈다. 남편의 뜻밖의 반응에 아내는 아내대로 화가 났다. 그러면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하는 말, “국수는 다시마 물에 말아 먹어야지!” 아내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앞으로 당신이 요리해!”
결국 동네 이장에게 가서 누가 옳은지 물었다. 이장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했다. “국수를 설탕물에 말아 먹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그 말끝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런데 국수를 다시마 물에 말아 먹는 사람도 처음 봤네.” 이장의 말에 둘은 티격태격 또 싸움을 벌였다. 한참을 다투다 이장한테 재차 물었다. “그러면 이장님은 어떻게 드세요?” 이장이 한마디 한다. “국수는 콩국에 말아 먹는 거야!”
식성만 다를까? 성격, 생활 습관, 종교, 언어, 남녀 차이 등 무수한 차이가 존재한다. 성경 속에도 판이하게 다른 자매가 나온다. 마르다와 마리아다. 마르다는 현실적, 언어적이며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마리아는 감정적, 비현실적, 직관적, 충동적이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마리아의 돌발 행동은 엉뚱함의 결정판이다. 문화를 뛰어넘고 상식을 초월한 깜짝 이벤트였다. 제자들은 경제적 잣대를 들이댔다. 그것은 비싼 향유를 허비한 잘못된 행동일 뿐이었다. 일제히 비난과 책망과 질책이 쏟아졌다.
그런데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셨다. 좋은 일을 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역사적으로 길이 기억될만한 기념비적 행동으로까지 인정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가만두라고. 결혼은 차이와 차이의 결합이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틀렸다고 주장한다. 자기 방식만이 절대적인 양 착각한다.
가정 안에 질책하는 제자들의 소리가 진동한다. “치약을 왜 이렇게 아무렇게나 주물러 놓지? 드라이어를 세로로 세워 놓고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가로로 눕혀서 써야지. 보일러 꺼! 이 날씨가 뭐가 그렇게 춥다고 엄살이야? 볶음밥을 케첩 맛으로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등등. 제자들처럼 내 방식이 아니면 틀렸다며 판단하고 책망한다. 이제 질책을 멈추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괴롭히지 말고 가만 두라!” 하나 됨의 유일한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