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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억지와 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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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과속운전을 해서 여러 번 벌금 스티커가 날아왔다. 남편은 잔소리를 했다.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운전면허가 취소돼야 정신 차릴 거냐고? 하여튼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건 알아준다니까. 그러니 애들이 저 꼴이지!”
아내는 애들까지 끌어들이는 비난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후 과속에다 난폭운전까지 더해졌다. 남편이 협박도 하고 비난도 하고 위험성도 경고했지만 아내는 그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남편의 고민은 깊어졌다. ‘왜 변하지 않을까?’
한 어머니가 똑같은 고민을 털어 놓았다. “청개구리 같아요. 하라 하면 안 하고, 하지 말라 하면 하고. 며칠 전에는 ‘손 씻어!’ 했더니 ‘싫어!’ 하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무지 혼냈죠. 투덜거리며 손을 씻더라구요. 정말이지 내 자식이지만 이렇게 말 안 듣는 애는 처음 봤어요.”
이들에게 사도 바울은 말한다.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이들은 깨닫는다. 억지로 움직이게 하려 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의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졌다. 몇 날을 고민한 끝에 남편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냈다.
“여보, 운전할 때는 찬송을 불러 봐요. 당신이 60킬로를 달릴 때는 ‘내가 매일 기쁘게 주의 길을 행함은’ 찬송이 적당할 거예요. 80킬로로 달릴 때는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를 부르고, 100킬로로 달릴 때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가장 적당할 거구요. 마지막으로 120킬로로 달릴 때는 ‘주여, 나 이제 갑니다’가 좋겠지요.” 메모를 읽은 아내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날로 과속운전은 중단됐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달리 말했다. “싱크대에서 씻을래? 화장실에서 씻을래?”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이 대답한다. “화장실에서 씻을래요.”
이를 내적 동기라 한다. 강압에 의해 움직이게 하는 외적 동기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말밖에 모르는 언어장애자가 넘쳐나고 있다. 이들에게 바울은 말한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 언어가 있다고. 이 언어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자발적 선택이다. 억지와 자의! 변화와 퇴보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다.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투덜거림을 잠재우며 신바람을 일으키는 바울의 언어! 행복으로 가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