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12월

선행

과월호 보기


연구소의 하루는 153으로 시작된다. 하루 한 번 선한 일(1), 다섯 번 감사(5), 세 번 웃기(3). 실천한 내용을 돌아가며 나누는 것이다. 감사를 나누며 생각의 근육을 스트레칭한다. 실컷 웃으며 행복 엔돌핀으로 온 마음을 샤워한다. 신바람으로 싱그러운 아침이 열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한 일을 나눌 때면 뿌듯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가 차도를 건너실 수 있도록 교통정리 해 드린 일. 건물 청소하시는 분께 작은 선물과 편지로 감사를 전한 일, 상처 때문에 울부짖는 사모를 반나절 내내 무료로 상담하며 치료한 일, 부정성으로 똘똘 뭉친 직원이 긍정성으로 변화되길 기다리며 기도한 일, 시간에 쫓기며 운전하면서도 차선을 양보한 일, 장애우 부부들을 행복으로 춤추게 한 일, 꿈이 없어 방황하는 학생이 꿈을 찾고 꿈을 완성하도록 이끌고 격려한 일, 폐지 수집하러 다니는 젊은 아기 엄마에게 군고구마 나눠 준 일, 지친 남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일….
사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딴엔 선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당연한 일을 선한 일로 과장한 것도 있다. 좀 더 솔직히 말해 동기가 불순할 때도 있었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하고픈 이기적 동기 말이다. 나의 선행을 알아주기 바라는 공명심도 있다. 이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나를 위한 선한 일이었다. 
성경은 말한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나는 마땅히 받을 자들에게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내게 선을 베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끼지 말고 풍성히 베풀어야 한다. 이 차원을 달리하는 정의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선한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조항이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아까운 것들이 많다. 힘들게 구입한 음악, 분초를 다투는 시간, 혼자만의 공간, 오랜 시간 공들여 키운 사람들, 희귀한 강의 자료 등등. 물론 “No!”라고 말하면서 분명한 경계를 긋고 내 것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마땅히 받을 자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내줘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준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듯이 말이다.
차원 낮은 선행임에도 생각하고, 실천하고, 기록하고, 나누다 보니, 선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생명이 살아 있어 아직도 힘이 있는 한, ‘마땅히’ 그리고 ‘아낌없이’ 베푸는 선행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발걸음은 오늘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