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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형적인 몰입형이다. 속된 말로 한번 필이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린다. 일상적인 일들은 다 잊는다. 프로젝트가 끝나야 원래대로 돌아온다.
사모 및 크리스천 여성을 위한 치유와 회복 축제 ‘러빙유’를 개발했을 때, 사모 및 여성들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이 역동적인 사역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석 달 전부터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 준비에 들어갔다. 기도로 준비하고, 사역자들을 훈련시키고,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준비물을 챙기고, 참가자를 모집하는 등 발걸음이 바빠졌다.
마침내 세미나가 열리고, 말라 비틀어져 가던 영혼들이 성령의 섬세한 터치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남편 탓, 자녀 탓, 시어머니 탓, 교인 탓만 하며 빳빳이 고개를 치켜들고 원망하던 이들이 말씀의 능력 앞에 겸손히 고개 숙였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오래 묵은 독기가 빠졌다. 한결 말개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행복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성장한 여성들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세미나가 끝났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승리의 개선장군이 돼 보무당당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남편의 환영사를 기대하며. 그런데 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여보, 밥 줘!”
황당하다. “여보, 수고했어. 당신 대단해. 힘들었지? 역시 당신이야”가 아니다. 그냥 배고프니 밥 달란다. 그 말끝에 남편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는 사역자가 아니라 아내가 필요해!” 하늘의 음성이었다. 하나님의 브레이크 장치였다. 나는 급히 멈춰 섰다. 비로소 남편이 보였다. 아내의 따뜻한 돌봄이 필요한 남편 말이다. 그는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늘 사랑해서 미칠 것 같은 그런 아내가 아니라, 아주 필요한 사람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공기 같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 지혜로, 슬기로 당신의 앞길에 아주 밝은 헤드라이트 같은 불빛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호롱불처럼 아니 반딧불처럼 당신 가는 길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겠습니다.”
이제 나는 기도한다. “주님, 수많은 사람의 치유자가 되기 전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꿈꾼다. 흰서리 내린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당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소. 당신을 만나 행복했소”라는 고백을 듣는 아내가 되는 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