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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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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가 홀로 유학하고 있는 장성한 아들에게 보낸 메일이다.
“장소가 중요해! 공공장소. 교회라든지 학교라든지 말이야. 그래야 감성보다 이성이 작용하거든. 그런데 카페? 그런 데서 만나면 감성이 작용해. 그러면 손잡고 포옹하고 뭐. 여자가 이뻐 보이고, 화장발도 잘 받잖아. 임마, 너 속는 거야. 처음이 힘들지, 손 잡히면 다음에는 손을 잡아도 가만히 있어. 그러면 다음 단계는 뭐야? 손이 어깨 뒤로, 그 다음 키스, 다음은? 이게 육체적으로 자연스런 순서야. 그러니까 이성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교제해야 한다 이거야. 나도 네가 이해가 돼. 혼자 유학생활이 외롭잖아. 그렇다고 육체적 욕망에 자신을 맡겨서는 안 된다!”
뒤떨어진 구시대적 발상이요, 고리타분한 잔소리라 여겨지는가? ‘젊은이의 양지’라는 영화가 있다. 몽고메리가 시골에서 올라와 너무 외로워 공장 다니는 가난한 아가씨와 연애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에서 상류사회의 멋진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공장 근로자 여자다. 임신까지 한 상태다. 몽고메리는 고민 끝에 그녀를 죽이려고 결심한다. 밝은 달밤에 호수에서 함께 배를 탄다. 배 위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배가 뒤집힌다. 남자는 헤엄쳐서 살고, 여자는 시체로 발견된다. 도망갔던 몽고메리는 살인죄로 체포돼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청년의 정욕을 참지 못한 결말,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결과다.
스카이다이빙을 배우는 학생이 낙하지점에 이르기 직전, 갑자기 낙하산을 벗기 시작한다. 강사가 당황하며 묻는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내 몸에 이런 귀찮은 끈들을 달지 않고 하늘을 나는 자유를 경험하고 싶단 말입니다!”
낙하산 없이 뛰어내릴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부터 도피할 자유는 없다. 성(性)도 마찬가지다.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서 도피할 자유는 없다. 이 때문에 성경은 말한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심지어 참을 수 없거든 혼인을 하라고까지 말한다(고전 7:9). 하나님은 죄에 맞설 수 있는 내 능력에 감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해 달아나는 순종에 감동하신다.
오늘도 이 땅의 경건한 청년들은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겠다”고. 청년의 정욕을 제어하는 남성이야말로 최고의 신랑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