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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달음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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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 택시를 탔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운전기사를 부른다. “아저씨, 아저씨, 제가 강남으로 가자 그랬어요? 강북으로 가자 그랬어요?” 뒤돌아본 운전기사.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아줌마 언제 타셨어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운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했다. 첫 직장인데다 원래 대충 못하는 성격이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이 성공이라 여겼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하고, 꽃병에 꽃을 꽂고, 커피 끓여 놓고, 서류 준비 마친 후 상사를 맞이했다. 퇴근 후에도 혼자 남아 못다 한 일을 처리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비스킷과 커피로 식사를 대신하며 일에 매달렸다. 결국 폐결핵에 걸렸다.
질병은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삶이 무의미해졌다. 그때 이 말씀을 만났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스스로에게 물었다. 달음박질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선한 싸움의 대상은 무엇인지. 이 길은 분명, 내가 달려갈 길이 아니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가정사역자로서의 삶은 그렇게 준비됐다.
이 말씀은 중년기에 한 번 더 찾아왔다. 인생의 허무감에 빠졌던 나는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나의 달음박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무용/동작치료를 공부했다. 신체 심리학자로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더 이상 추월의 시대가 아니다. 초월의 시대다. 마음 산업이 굴뚝 산업을 앞섰다. 소득 2만 불이 될 때까지 고속도로에 차를 올릴 것만 생각했다. 속도를 즐겼다. 남을 앞지르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여겼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는 순간, 처음에는 가슴이 뻥 뚫린다. 그러나 곧 답답해진다. 고속도로는 추월선과 주행선밖에 없다. 다음 휴게소까지 가야 한다. 속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올레길을 찾아든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뜀박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멈추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골인 지점이다. 나의 달음박질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 말씀 앞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