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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흠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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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목사’라 불리는 송길원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유 없는 시샘을 받게 된다. 주로 여성들에 의해서다. 웬 특권을 혼자 누리느냐다.
더구나 남편과 더불어, 남편의 사역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는다. 동시에 나만의 색깔과 은사와 소명으로 독자적인 사역을 한다. 이 또한 시샘거리가 된다.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깎아내리기, 이간질하기, 흠집 내기 등.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내뱉는다.
끊임없는 편견과 싸워야 한다. 내가 나무라는 건 비난이 되고, 남편이 야단치는 건 충고가 된다. 남편이 잘못하는 건 실수고, 내가 실수하는 건 실패다. 내가 일하는 영역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면 월권이라 말하고, 남편의 결정권을 존중하면 책임회피라 말한다.    
억울했다. 이유 없이 당하는 일이라 여겼다.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여겼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경우에도 남편의 리더십을 해치지 않으며, 우리는 각자의 영역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는 각각의 리더십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다니엘도 사람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고소를 당했다. 그런데 그는 이유와 근거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허물이 없었다. 아무 그릇함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허물투성이다.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 닥치면 한꺼번에 벼락치기로 일처리를 한다. 이러니 종종 주변을 정신없게 만든다. 대화를 하다가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좋게 말하면 창조성이요, 나쁘게 말하면 산만함이다. 게다가 돈 계산은 제로다. 종종 남편이 뒷감당을 해야 한다. 뭐든지 빠르다. 판단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 예측도 빠르다. 남들은 겨우 문제를 진단하는 동안에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빠른 속도를 맞추려니 주위 사람들은 늘 헉헉거린다.
건망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물건 떨어뜨리고 깨뜨리는 데는 일등이다. 제자리에 물건이 놓인 적도 별로 없다. 다른 사람 물건도 내 자리에 옮겨다 놓기 일쑤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올라간다. 
허물을 적다 보니 끝이 없다. 허물투성이니 당연히 고소거리투성이다. 당연하다 여기니 억울함이 사라졌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아니, 이 정도만 해 주니 감사하다. 이토록 많은 허물을 덮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절절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