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역이고, 사역이 사람이다.” 이것이 내 사역의 원칙이다.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의 됨됨이는 성령의 역사를 돕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 상처 난 마음을 회복시키는 치유사역의 경우,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진다. 동역자들은 영적 군대다.
사랑해야 할 사람과 동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사랑해야 할 사람은 무조건적 수용을 원칙으로 한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동역해야 할 사람은 조건적 수용을 원칙으로 한다. 여전히 사람 그 자체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동역이라는 면에서는 조건적 수용이다. 그 조건에는 몇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있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자, 앞뒤가 다르지 않은 자,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는 자, 질서를 존중하는 자, 약속을 지키는 자, 감사할 줄 아는 자, 마음과 영혼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자, 잘못했으면 사과할 줄 아는 자 등이다.
이 중에서도 절대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권력욕을 갖고 파당을 조성하는 사람이다. 그 영향력은 무서울 정도다. 분열의 기준은 나이, 교단, 교회, 지역, 학벌, 재산, 외모 등 다양하다. 반드시 리더와 엇박자를 놓는다. 혼란을 일으킨다. 결국 하나님의 군대는 지리멸렬 흩어진다. 영적 영향력을 상실한 무력한 군대가 된다. 사탄은 승전을 예견한 듯 기뻐 춤을 춘다.
이러니 목자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양 떼를 살필 수밖에 없다. 분별력 없는 양들은 엉뚱한 길을 간다. 자기가 목자라고 착각하는 양도 있다. 그가 목자인 줄 알고 따라가는 양 떼도 있다. 그때마다 목자는 지팡이로 툭툭 치기도 하고, 끌어오기도 하고, 가로막아 다시 데려오기도 한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특별하다.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아무것도 아닌 자를 선택해 사용하신다. 목적은 단 하나, 자랑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자랑할 거리가 없는, 그래서 자랑하지 않는 자들이다.
내 기준을 다시 보니 자랑할 거리가 많은, 그래서 자랑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나를 내치지 않고 주님은 사용하신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의 기준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