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로마서는 복음의 진수를 다룬 바울 서신이다.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그리고 영원한 멸망을 피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의 핵심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과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 가능
로마서에서 우리는 소망 없는 죄인의 모습, 곧 인간의 절망적 모습을 묘사하는 본문을 만난다. 바울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람은 다 거짓되고, 자신도 낫다고 할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나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롬 3: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2)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이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20)라는 말씀은 바울이 가진 인간론의 절정이다.
바울의 이런 주장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나는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행 22:3).
이렇게 유대인으로서 완벽했던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철저히 부패한 죄인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일까?
한편, 로마서에서 바울은 또 한 가지 놀라운 주장을 한다. 그는 스스로는 도무지 의인이 될 수 없는 죄인이요, 사망에 처한 죄인인 자신이 그 문제를 온전히 해결받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과 행함으로가 아닌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진리를 깨닫고 확신에 차서 선포할 수 있었을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칭의(稱義) 주장
로마서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고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로마서의 전개상 중요한 요약적 진술인 이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칭의를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이 무죄한 자의 죽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죽음이었음을 증명하고,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확증한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철저한 율법의 사람에서 철저한 죄인으로,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된 것이다.
구약에 능통하고, 죄인 됨에 눈뜬 인물
두 번째 이유는 바울이 구약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구약을 예수님 중심으로 새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구약에 근거해 인간의 죄인 됨을 말하고, 아브라함을 근거로 이신칭의 복음을 해석하며 논증한다. 또한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님을 향한다는 것을 설명했고,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창세기의 아담과 대비해 설명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관점에서 구약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세 번째는 바울이 죄인 됨의 깊이에 눈을 뜬 인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치명적이며 철저하게 악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오직 십자가와 이신칭의의 복음을 확고하게 선포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이번 달 로마서 묵상을 통해 바울이 누린 복음의 은혜를 함께 누리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