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참조 출 20:3)는 말씀을 제1계명으로 믿고 지키도록 부름받았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진리를 계명으로 주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창조주시요 아브라함을 불러 주시고 출애굽을 이루시며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분이시다.
비참한 멸망 속 말씀 선포의 소명을 감당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들의 멸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멸망이 현실이 되고 있는 현장 속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충격적 슬픔을 이렇게 토해 낸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참조 애 2:11).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 슬프고 비참한 현장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절망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소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인물로 자리한다. 본문을 통해 참혹한 모순의 상황에서 나타났던 그의 인물 됨을 함께 살펴보자.
예레미야가 처한 첫 번째 모순의 상황은, 당시 유다 백성의 시각에서는 애굽에 타당하고도 지혜로운 생존의 길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바벨론의 침략이 계속되는 극단의 위기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는 예레미야의 선포를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다(렘 43:2).
바벨론의 위협으로 백척간두에 선 유다 지도자들의 주장은, 백성이 예레미야의 선포를 버리고 결사적이고도 신속하게 애굽으로 피하게 했다(렘 43:7). 이들의 결행은 예레미야의 인물 됨을 더욱 생생하게 묵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기 때문이다(렘 42:5). 그러나 그들에게 예레미야가 전해 준 하나님의 뜻은, 강대국 애굽으로 피하면 생존할 수 있어 보이는 현실적 대안 앞에서 미련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주권으로
예레미야가 처한 또 하나의 모순은, 예레미야서 후반부에 이어지는 9개의 이방 나라들을 향한 긴 선포였다. 왜냐하면 열방이 볼 때,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유다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방 나라의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이다(렘 46:1). 자국의 멸망도 해결하지 못하는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방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도 심판의 말씀을 서슴없이 선포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어떤 인물이기에 이 같은 모순의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예레미야는 어떻게 현실을 거슬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선포하고, 또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예레미야의 사역과 삶의 근거는 그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에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렘 42:7).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이다. 거의 250회 이상 등장하는 이 표현은, 예레미야가 말씀의 인물임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모순의 시대, 멸망의 시대를 믿음으로 통과하는 방법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임을 보여 준다.
또한 예레미야서 후반부의 열방을 향한 긴 심판의 선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열방의 통치자이심을 확신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만이 여전히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다. 이점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창조주요(참조 창 2:1, 사 45:12),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힘과 권세를 지니시고(참조 시 89:8)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참조 사 10:23) ‘만군의 여호와’로 즐겨 말했다는 점(80구절 이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유다 역사 최고로 충격적인 사건인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포로의 시대를 목도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의 중요성과 하나님만이 진정 유일하신 열방의 통치자이심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