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11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무명의 여인, 그러나 빛나는 인물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몇 명인지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 사람은 극히 적었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마가복음 14장 3~9절에 등장하는 한 이름 없는 여인의 믿음은 얼마나 빛나는지!(참조 마 26:6~13; 요 12:1~8)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더욱 캄캄해져 가기만 하는 거대한 무지의 물결을 거슬러 일어난 사건이어서 더욱 빛이 난다.


사건의 발단 - 한 여인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 나드는 인도 산(産) 식물의 뿌리에서 채취한 고급 향유로, 나드 한 옥합의 값은 보통 300데나리온 이상이었다. 당시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 보통 1데나리온이었으니까 이 여인이 깨뜨린 향유는 노동자의 1년 치 품삯에 해당하는 매우 값진 것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상황이 임박해 있었고, 더욱이 예수님께서 유대 민족의 메시아로서 다윗처럼 왕권을 회복할 순간이 절실하게 기다려지는 이 긴장된 상황에서 이 여인의 튀는 행동은 모든 기대를 물거품 되게 할 수 있는 빌미로 여겨졌을 것이다(참조 막 10:35~41).

 

사건의 전개 - 제자들
이렇게 불쑥 벌어진 사건 앞에서 ‘어떤 사람들’ 즉 제자들은 화를 냈다. 더 나아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녀를 책망한다.
이는 유대교의 3대 경건 행위의 하나인 구제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분노가 정의로움을 주장한 셈이다. 이처럼 예수님을 죽이려는 권력자들의 음모가 조여드는 상황에서 여인의 돌발 행동과 제자들의 반응은 격렬히 충돌했다. 이 심각한 사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사건의 결론 - 예수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가만 두어라…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6~8절). 말 그대로 뜻밖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절묘하게 제자들의 주장처럼 구제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여인의 행동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음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된 것이며, 또한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인 자신이 죽음을 통해 그 사명을 완수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이 여인이 마리아인 것으로 보이지만, 마가복음 14장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다. 어쩌면 이름을 빼도 될 정도로 익히 아는 사람이거나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게 있다. 마가는 이 본문의 앞뒤 문맥을 통해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1절) 달려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나, 예수님의 공생애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스승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여자를 책망’(5절)하는 제자들에 대비해 그 여인의 행동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여인의 모습은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가룟 유다가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고 있다는 말씀(10~11절)과 충격적인 대비를 이룬다. 또 더 나아가 같은 장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라는 말씀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0절)라는 말씀에 비참하다 싶을 정도의 대조를 보여 준다.
누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인가?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한 여인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 대답을 들려주시는 듯하다.

이 무명의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빛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