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사도행전은 인류가 처음으로 만나는 공동체 곧 교회가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밝혀 준다. 그것은 존 스토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였다.
이 특이한 공동체인 교회의 탄생 시점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 스데반은
첫 순교자가 된다. 교회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순교는 스데반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궁금하게 할 뿐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는 교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예수님을 따라가다
스데반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명으로 세워진다(행 6:4). 그런데 사도행전은 스데반에 대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행 6:8)라고 말한 다음, 곧바로 그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공회 앞에서 고소당하는 상황을 기록한다(행 6:9~14).
사도행전에 기록된 스데반이 고소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고(행 6:11), 둘째는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한 것이었다(행 6:13). 즉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데반을 고소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은 ‘매수’(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와 ‘충동’(권력자들을 부추김)과 ‘거짓 증인들의 등장’ 등이었다.
스데반의 고소 과정은 예수님이 고소당하신 과정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참조 마 26:59~61). 고소 이유도 그렇고, 고소하는 방법도 그렇다. 사도행전은 이런 방식으로 신약 교회 역사상 첫 순교의 인물 스데반을 소개함으로써 우리에게 스데반이라는 인물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 곧 ‘작은 예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신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고, 예수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사신 대로 사는 자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고소와 유사했던 스데반의 고소 사건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이제 막 시작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제자란 과연 누구인지를 더욱 확연히 드러내 준다.
성령으로 충만하다
스데반이 이와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이라고 사도행전에서 반복 강조하고 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6: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6:8), “지혜와 성령으로”(6:10) 그리고 “성령 충만하여”(7:55)라고 말이다.
스데반은 신약의 첫 교회에서 집사로 선출돼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혹은 ‘작은 예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 인물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성령을 빼고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에게서 두드러지는 모습은 말씀 선포다. 스데반을 고소한 사람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 복음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6:10).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7:2~53)가 그것이다. 그는 설교를 듣는 자들의 마음에 찔림이 있도록, 구약과 하나님의 역사를 예수님 중심으로 명쾌하게 전달한다. 이 사건은 성령 충만이 말씀 충만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말한다. 초대 교회 사도들이 감당했던 사명이 성령 때문이라는 뜻도 되지만, 우리는 스데반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번 호부터 묵상하는 사도행전을 통해 말씀 충만의 은혜와 함께 성령 충만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구한다. 그래서 첫 순교자인 작은 예수 스데반처럼, 우리 모두 예수의 제자로 사는 길을 힘 있게 걸어갈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