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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함을 찬양한 아삽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시편 가운데 적어도 열두 편은 아삽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아삽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시점은 다윗 왕 때다. 다윗은 왕이 된 이후, 그리고 이스라엘 주변 대적들을 평정한 이후, 무엇보다 블레셋에 빼앗긴 언약궤를 되찾고자 했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언약궤를 다시 찾아오는 과업을 진행함에 있어 다윗 왕은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때 율법을 따라 언약궤 앞에서 찬양의 임무를 맡게 된 인물이 아삽이다.


아삽, 찬양의 자리로 부름 받다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과정은 찬양의 시간 그 자체였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삼하 6:5).
그만큼 아삽의 역할은 중요했다. 그 가운데서도 그는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대상 15:16~17).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아삽은 우두머리요…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대상 16:4~5).
이에 걸맞게 아삽은 시편 50편과 73~83편을 쓴다. 아삽은 어떻게 다윗 왕국의 찬양의 임무를 맡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록하는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었을까? 그가 쓴 시편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나가 보자.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
시편 50편을 제외한 아삽의 나머지 시편 11개는 시편의 제3권에 속한다. 그 시작이 되는 73편에서 아삽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공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악인이 형통하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악인의 형통이라는 현실 앞에서 아삽은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뿌리째 흔들렸고, 큰 시험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아삽은 이 당황스러운 신앙의 과제를 믿음으로 극복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빛나는 진리를 고백하는 자리에 이른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 그의 이 같은 고백은 자신의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때문이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
우리는 여기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의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아삽의 높은 찬양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아삽에게 있어서 찬양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게 됨으로써 잠잠히 있을 수 없는 전인적 고백이요, 삶의 실제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함으로
그렇기에 아삽에게 바른 찬양은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의 역사에 대한 ‘감사’였고, 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순종’ 자체였다(참조 시 50편). 이런 아삽의 태도가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바탕이 됐다.
그는 어떻게 이와 같은 신앙과 영적 지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가 쓴 시편 74~83편은 그 비밀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시 80:8).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시 83:9).
아삽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도전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십자가 구원을 잊지 않는다면, 감사로부터 터져 나오는 찬양을 회복할 수 있다고. 또 죄의 최고 권세인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순종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번 한 달, 시편을 묵상하면서 샘솟듯 솟아나는 찬양의 은혜를 만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