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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보여 주고 떠난 에녹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인류의 첫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5장. 여기에 아담으로부터 시작해 노아까지 열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 일곱 명이 900세를 훌쩍 넘는 인생을 살았다. 특히 므두셀라는 무려 969년을 살아 인류 중 가장 장수한 것으로 기록됐다(창 5:27).
성경에 기록됐으니 우리는 읽기도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900세가 넘은 사람을 상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다. 그런데 그런 조상들과 대조적으로 겨우(?) 365세를 산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의 아버지 에녹이다.


믿음으로 ‘짧고 굵게’ 산 인생
창세기 5장의 족보로 보자면 에녹은 그야말로 ‘짧고 굵게’라는 말이 떠오르는 사람이다. 900세 이상을 살던 시대에 365년을 살았으니 짧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굵었다. 굵게 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무엇이 하나님 앞에 사는 인생에 굵은 삶이라 칭할 만할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라는 창세기 말씀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1:5).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라는 말씀을 듣는 인생보다 ‘굵은 인생’은 없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난 성도의 최고의 갈망이요, 진정 영광스러운 복이 아닌가? 그러므로 에녹의 인생은 복되다. 물론 그의 생애에는 고난도 가득했을 것이다. 고난의 인생 한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평가를 들었던 것이다. 에녹은 어떤 인물이기에 그런 굵은 믿음의 인생 족적을 남겼을까?

 

동행, 삶의 방식을 따르다
신약 히브리서가 기록될 때까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어져 온 에녹의 신앙 유산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히 11:5)라는 것이었다. 그 영적 자산은 영감된 말씀으로 기록돼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두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그가 계신 것’을 믿는 것이었고, 둘째는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었다.
에녹이 보여 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은 참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의 삶이었다. 이 믿음은 에녹의 믿음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요 현실이기도 하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은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한다. 동행이다. 이 동행이라는 단어는 삶의 방식을 따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삶의 방식을 주님의 말씀과 뜻에 일치시키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참으로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던 에녹
한편, 이런 믿음이 에녹 스스로의 확신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바로 두 번째 믿음에서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가 믿어 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점이다. 에녹은 산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고, 이 산 신앙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믿음의 사람 노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 에녹 역시 본질적으로 의인이요, 완전한 자인 것이다. 에녹은 이 두 가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굵은 인생’을 살아낸 것이다.
물론 그의 믿음의 삶은 이 두 가지만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에녹의 믿음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었던 것이다. 창세기를 묵상하는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매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