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롯’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일 것이다. 이 사건은 당대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온 인류에게 타락과 심판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기록된 묘사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다’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끔찍하고 결정적이었던지 예수님은 세상의 종말을 설명하기 위해 노아 때의 홍수 사건과 더불어 바로 이 소돔의 멸망을 예로 드셨다(눅 17:26~30). 소돔의 멸망은 과연 인류 최고의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충격적인 멸망의 현장을 경험하다
온 인류 역사상 대표적인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그 현장에 바로 롯이 있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던 도성들, 그래서 그곳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이 다 엎어지고 멸망당하는 인류 최고의 충격적 현장을 간신히 빠져 나온 인물이 바로 롯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롯은 소돔의 멸망만큼이나 충격적인 불신앙의 모습을 보인다. 한마디로 엄청난 은혜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롯은 아브라함의 이름이 처음 언급되는 창세기 11장 26~27절부터 등장한다. 롯은 당시 세계적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다(창 11:27~28). 얼마 후 그는 할아버지 데라와 큰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났고, 하란에 거주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는다. 그 후 롯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이주하는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에 이른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아브라함의 영적 여정에 함께했다
롯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가 될 때까지 그의 곁에 있으며 부친과 조부의 죽음, 고향을 떠나는 이별의 아쉬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 고생, 낯선 땅 가나안에 대한 두려움 등의 복잡미묘한 인생의 질곡을 겪는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하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사건이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을 목도한다(창 12:4~8).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겪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 역사하시는지 똑똑히 봤다(창 13:1~4).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결단의 순간, 하나님을 경험한 그 모든 시간이 롯에게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만다. 아브라함을 떠나야 할 때가 도래하자, 롯은 눈으로 보기에 멋지지만 멸망이 예고된 도성, 소돔을 선택한 것이다(창 13:10).
이후에도 롯의 영적 체험은 계속됐다. 롯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모든 재물을 빼앗기고 사로잡히는 일생일대 위기 속에서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구출됐고(창 14:16), 아브라함이 사람과 돈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했다(창 14:22~23). 무엇보다 롯은 언약 체결과 할례(창 17장) 같은 아브라함의 영적 여정을 직간접적으로 함께했다. 하지만 소돔이 멸망할 때까지 그는 그곳의 삶에 젖어 있었다(창 19:16).
체험이 아닌 은혜로 돌이켜야 변화된다
롯에게서 발견하는 놀랄 만한 또 하나의 모습은 소돔 멸망 이후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롯은 술에 취하고, 딸들과 동침하는 지경에 이른다(창 19:30~35).
롯은 왜 아브라함이 지나온 은혜의 여정을 함께했으면서도 소돔의 멸망 못지않은 충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성경은 왜 이 사건을 이렇게 자세히 다루는 것일까?
롯 이야기는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단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부패한 우리의 마음이 고쳐져야 한다. 인간적 개선이 아니라 성령으로, 은혜로 참된 돌이킴에 이르러야 비로소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외에 부패한 인간에게 구원의 다른 길은 없다.
또한 성경은 롯의 행보를 아브라함의 모습에 대비시켜 놓음으로써, 인간이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다고 외친다. 믿음은 형식이나 체험에 머무를 수 없다. 전인격적이고 온전함에 이르는 것이어야 한다. 롯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만일 수 없기에 오늘도 겸손하게 말씀 앞에 무릎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