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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에스겔은 유대 공동체가 당하게 될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자기 개인의 삶을 통해 받아내는 사역을 했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우리가 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섭리를 통해 그의 사명을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선지자가 당한 일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선지자의 아픔을 통해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큰 슬픔 속에서도 사명을 다한 에스겔과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눈에 기뻐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16~18절)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서 그 눈에 기뻐하는 것, 즉 늘 보기를 원하는 대상을 빼앗을 것을 예고하신 후,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크게 슬퍼하지 말고 애곡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 “눈에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2. 에스겔의 아내는 에스겔이 어떤 일을 한 날 저녁에 죽었습니까? 아내의 죽음 앞에서 에스겔은 어떤 행동을 보였습니까?(18절) 에스겔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떤 마음이 드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아침, 그날 저녁에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에스겔은 아내를 잃었음에도 크게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3. 에스겔이 당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예언하셨습니까?(21~23절)
- 에스겔이 그 기뻐하는 아내를 잃고도 크게 애곡하지 못했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결국 성전(성소)을 잃을 것이나 그것에 대해서 마음껏 애곡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4. 에스겔이 전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예언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25~27절)
-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이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이 간절하게 생각하는 자녀를 데려가는 날”이란 곧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끌려오는 날을 의미한다. 그날에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고 도피한 사람들이 에스겔의 예언이 정확했음을 증언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5.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종교적, 민족적 자존심이었기에 성전을 잃는다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잃는 것에 비유될 만큼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잃고도 에스겔처럼 애통해 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을까요? 각자 생각을 말해 봅시다.
- 슬픔을 다 표현하지도 못하는 억압에 눌릴 것을 예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죄로 인한 당연한 결과임을 받아들여야만 함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문제이다.
6. 에스겔의 입장에 서서, 과연 내가 이런 사명을 부여받는다면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유대 공동체의 죄 때문에 고통을 묵묵히 참고 견뎠던 에스겔과,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할 일을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배우자의 죽음은 인간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어쩌면 에스겔은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까지만 해도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이 바로 자기 아내임을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아내를 잃은 에스겔은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과연 우리 자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얼마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백성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해 고통을 참고 견뎠던 에스겔처럼, 백성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젠 우리가 바로 그 주님을 따르는 사명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