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0년 06월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이것은 타이밍을 놓친 사진이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햇살은 너무 강했다. 다음 날이면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들녘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연히 만난 밀밭이 바로 이 장면이다. 노랗게 익은 부분과 덜 익어 파란 부분이 쌍곡선을 그리며 구릉을 따라 뻗어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병풍처럼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밀밭을 감싸고 있는 ‘남겨진 나무’들이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진을 찍자니 시간이 안 좋고 그냥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때에는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한두 장 찍어 두는 것이 상책이다.
역시 아쉬움이 남는 사진이 되어 버렸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면 다시 와서 좋은 햇살을 골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밀밭의 대조적인 컬러를 더 박진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하늘에 떠 있는 몇 조각의 구름을 선명하게 살려서 훨씬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실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진을 크게 현상해서 내 방에 걸어 놓았다. 침대에 누워서 쳐다볼 때마다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일본 사람들처럼 우상과 잡신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게도 시절을 따라 저렇게 풍성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진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나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선인이 살아남지 못하는 살벌한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 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