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캐롤린 아렌즈 Carolyn Arends
하나님이 허락하신 실패가 위대한 까닭은
액션이나 모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이 얍복 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을 읽어 보라.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야곱은 지친 몸으로 야영을 하게 되었다.
근심에 빠져 있는 야곱에게 낯선 이가 어둠 속에서 덤벼들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야곱은 자기가 밤새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야곱은 비록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지만, 마침내 축복을 받았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야곱은 하나님이 기꺼이 우리와 씨름하시는 분이며, 그때 살려 달라고 끝까지 애원해야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 대들 힘이 야곱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탈구시키고 나서야 야곱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진정으로 갈구했던 것, 바로 하나님의 복을 구하게 된다.
레슬링 코치인 내 남편은 레슬링 선수에게 허벅지 관절만큼 중요한 힘의 중심축은 없다고 말한다. 야곱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 힘의 원천을 치시고 나서야 하나님은 야곱이 그렇게나 간절히 원한 복을 주실 수 있었다. 그래서 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는 야곱의 이 유명한 패배를 ‘위대한 패배The Magnificent Defeat’라고 불렀다.
야곱의 이야기에는 뭔가 친숙한 교훈이 담겨 있다. 나는 가수이자 작곡가다. 과분할 정도로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 CCM 가수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누리는 특권으로 인해 항상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런데 작년 공연 여행 중에 정말 비참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공연이 3주째 접어들 때쯤, 갑자기 목소리가 잠겼다. 가수에게는 목소리야말로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중심축이다. 나는 찬양 사역이라는 소명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다시 목소리가 돌아와서 찬양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발성 코치에게 전화를 해서 지시 사항을 들었다.
“매시간 끓는 주전자 옆에 앉아서 수증기를 들이마신다. 물에 소금을 넣은 다음, 코로 증기를 들이마신다. 오레가노 기름을 몇 방울 혓바닥에 떨어뜨린다. 페퍼민트 오일을 윗입술에 약간 바른다.”
나는 24시간을 호텔 방에 틀어박혀 억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보내야 했다. 인터뷰도, 공연 준비 관련 전화도 절대 금지였다. 나는 계속해서 끓는 주전자에 얼굴을 대고 수증기를 들이마셨다. 공연 시간이 가까 워져 올 때쯤엔 피부가 전에 없이 부드럽고 뽀송뽀송해졌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는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졌고, 정신이 맑아졌다. 시편 23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쉴 만한 물가가 아니라, 수증기가 올라오는 소금 물가로 인도하신 건가?
마이크 앞에 다가서는 순간 왠지 목소리가 다시 회복될 것이며, 게다가 전에 없이 최고로 멋진 목소리가 나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노래를 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조금도 트이지 않았다. 쉬고 갈라지는 목소리만 나왔다. 최악이었다. 하지만 청중은 그런 나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함께 호흡해 주었다.
언제 어떻게 째진 목소리가 튀어 나올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 순간에 몰입했고, 결국 전혀 색다른 의미에서 새롭고 놀라운 찬양 사역의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너무 창피했지만 기쁘기도 했던, 평생에 남을 최고의 공연이었다.
레슬링 시합으로 치자면 후두염 발작은 내게 전초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더 힘들고 더 긴 싸움을 많이 경험해 봤고, 주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한 친구도 많다. 암이나 에이즈에 걸렸다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입증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노력이 다한 곳, 바로 그곳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평안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신 예수님의 메시지일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시면서, 예수님은 위대한 패배를 통해서만 가능한 승리를 이미 맛보고 계셨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힘이 꺾였을 때 기분이 진짜 좋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소유한 것들만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때로는 우리에게 탈구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