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우은진 기자
라이프스토리·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이만수 집사
“야구라는 운동은 철저하게 감독님의 사인에 따라 움직이는 스포츠입니다. 감독님의 작전사인을 놓치면 야구선수로서 성공하기가 힘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도 항상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사인을 잘 붙잡고 순종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 53년 동안 성공의 꼭대기와 실패의 끝자락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한 SK 와이번스 프로야구단 이만수 수석코치인천 은혜의교회 집사. 그는 야구감독은 사람인지라 판단이 흐려질 때도 있고 선수교체 시기를 놓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안전한 분이시라며, 주님의 사인sign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유는 그 자신이 여러 번 주님이 주신 사인을 놓쳤던 경험 탓이다.
삶의 전부였던 야구, 특별한 아내와의 만남
불신자 가정에 호랑이 같은 군인 출신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란 그는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중학교 시절 야구를 처음 접한 그는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야구만 할 정도로 그에게 야구는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던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운동만 하던 그에게 아내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눈 내리던 날 캠퍼스 운동장에서 불을 피우고 아내 앞에서 야구시범을 보이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아내의 집까지 달려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창문에 돌멩이를 던지며 만나는 등 연애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아내는 3년간 데이트를 하며 천천히 주님을 그에게 지혜롭게 전했다. 그러나 워낙 야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는 “교회 다닐 시간이 있으면 운동을 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어느 날 아내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은 그는 계속 데이트를 하려면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말에 아내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가정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 가정으로 변화되었다. 몇 년 전 소천하신 아버지는 안수집사로, 어머니는 권사로 지금도 새벽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최고의 선수에서 방출된 충격과 출애굽기 14장
대학 시절부터 최고의 선수로 각광을 받던 그에게 1982년은 각별하다. 바로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당시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 첫 프로야구 게임에서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기록하며 젊은 나이에 최고의 스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이제는 프로야구계의 전설로 통하는 그는 홈런왕, 타격 3관왕, MVP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무수한 기록을 세웠다. 최고의 선수의 자리에 있을 때도 그는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날 정도로 연습벌레로 살았다. 이때부터 그는 30대 중반까지 신앙인으로서 수없이 간증하러 다녔다. 그러나 그 간증은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야구선수로서 성공한 삶이 드러날 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주님을 야구인생의 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그러다 40대가 되어도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그는 성적이 떨어지자 벤치를 지키는 후보선수 처지가 되었다. 자연히 간증하는 것도 창피해서 피하게 됐다. 그는 하나님께 “예수 믿는 선수로 알려졌는데, 말년이 이렇게 부끄러워지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혹시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원망했다. 그리고 1998년 16년 동안 몸담았던 팀으로부터 방출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는 은퇴식도 없이 팀을 떠나야 했다.
그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는 한국에 있기가 솔직히 창피했다. 그래서 도망치다시피, 아픈 아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왔다. 그때 가져온 게 있다면 출애굽기 14장 10~14절 말씀뿐이었다. 광야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할 때 모세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선포한 말씀이었다.
마이너리그 코치 생활과 예레미야애가 3장
선수 시절에도 새벽 4시면 일어나 연습하던 성실한 그였기에 일단 여러 에이전시에 자비로 이력서를 냈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의 화려한 그의 이력을 보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연수코치로 그를 불렀다. 국내에서 현역 선수 시절 상대팀 팬들이 ‘만수 바보’라고 야유를 보내도 활짝 웃었던 그였지만, 미국에서는 영어가 안 되니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벙어리생활을 해야 했다. 마늘냄새 난다며 인종차별도 당했다. 또 젊은 미국인 선수들이 그의 뒤통수를 치기도 하고, 어깨로 등을 쳐 넘어뜨리기도 했다. 문화적 차이는 그를 힘들게 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샤워기를 틀어놓고 참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그는 출애굽기 말씀을 묵상하며 용기를 얻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두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 번은 경기 도중 5회까지 점수가 안 나와서 관중들이 지루해하자 감독이 이만수 코치를 3루 작전코치로 내보냈다. 한 선수가 안타를 치자 “Let? go!” 하며 특유의 파이팅을 외치는 그에게 심판이 미쳤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당황하며 항의하는 이 코치의 모습을 보던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다음 날 구단주가 그에게 관중들을 즐겁게 해줘서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는 그때 미국은 철저히 관중 위주의 재미있는 야구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1년간의 미국 마이너리그 코치 생활은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키웠다. 시즌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지도자로서 자신을 불러주는 구단이 없자 다시 좌절했다. 대구 주암산기도원에 가서 야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려고 기도하던 그는 산꼭대기 바위 위에서 울부짖었다. 그런데 주님이 그에게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예레미야애가 3장 26~28절의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참으로 신기했다.
다시 찾아온 기회, 원수가 은인으로
그 말씀을 붙잡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잘 웃고 선수들에게도 먼저 다가가며 미국 야구에 점차 적응해 갔다. 그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에서 홈런왕이었다는 그의 이력을 선수들이 보고, 공 10개 중 홈런을 몇 개 이상 치면 그를 인정하겠다며 제안해 온 것이다. 처음에 그는 6개의 홈런을 쳤다. 그러자 바람이 불어서 그렇다며, 다음 날 선수들이 그에게 다시 칠것을 제안했는데, 그날은 7개의 홈런을 쳤다. 그러자 도미니카 출신 선수가 그에게 타격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그의 열정에 감동해 그에게 불법과외(?)를 해줬다. 그리고 그의 성적은 몰라보게 올라갔다. 그런데 그 선수가 소문을 내는 바람에 또 다른 선수도 타격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역시 월등히 성적이 좋아졌다. 구단 내에 소문이 퍼지자 평소 그를 경계하며 인종 차별하던 게리 워드 타격코치가 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느냐며 그를 몰아세우고 몹시 괴롭혔다. 그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이너리그 팀은 우승을 차지했고, 우승하던 날 그렇게 그를 괴롭히던 게리 워드 코치가 그에게 다가와 그동안 오해했다며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2년간의 계약이 만료되자 다시 막막해졌다. 그는 주님이 주신 비전을 잊고, 한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근처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한 목사님으로부터 “당신처럼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동시에 가진 크리스천 야구코치를 하나님이 길러내시려면 30,40년이 걸린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 분야에서 더 업그레이드되도록 인내하며 한 우물을 파라”는 격려를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으로 부터 타격코치로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팀으로 가게 된 결정적 요인이 바로 원수 같던 게리 워드 코치가 그를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철저히 데이터 중심의 야구를 펼치는데, 성적 이외에도 누가 추천을 하는가가 중요했다. 평소 그가 구단 내에서 파이팅 하며 선수들을 도왔던 것이며, 인적 사항이 모두 파일로 만들어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철저하게 상부에 보고되곤 했는데, 그의 성실과 성품이 마이너리그 선수들뿐만 아니라 그의 적이라 생각했던 게리 워드까지 감동시킨 것이다.
빌립보서 4장과 빅 스마일 별명
메이저리그 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오자마자 모든 게 달라졌다. 피자와 햄버거를 먹던 식단부터 급여까지 엄청나게 차이가 났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그에게 전용 리무진에 아파트까지 제공되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그가 얻은 별명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늘 웃는 얼굴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빅 스마일big smile이라 지어 준 것이고, 또 하나는 언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구단 직원들과 팬들이 ‘화이트삭스 홍보대사’라고 지어 준 것이다.
사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 동양인이 지도자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빌립보서 4장 4~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염려하지 말고 기도로 구할 것을 아뢰라”는 말씀을 붙잡고, 힘들 때마다 억지로라도 웃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눈가에 주름이 많다는 그는 한번은 같은 팀 빌리 캇치 투수가 “만수, 너는 항상 웃는데 비결이 뭐냐”고 물어 왔다고 한다.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었던 그는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답변했는데, 빌리 캇치 선수는 마음이 상했다. 그와 마음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집에 와서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빌립보서 말씀을 들고 빌리에게 다가가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다. 나도 말년에 정상에서 내려와 벤치에 앉아 후보선수가 되어 힘들었지만, 이 말씀 붙잡고 여기까지 왔다”며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시즌 중간 그는 다른 팀으로 가게 되었다. 떠나는 날 아쉬워하는 그에게 빌리가 다가와 “네가 준 말씀을 라커룸에 붙여 놓고, 힘들고 슬픈 날마다 웃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 뭉클했다. 그리고 빌리의 앞날을 위해 기도했다. 이처럼 그는 과거에 후보 선수로서 벤치에 앉아 있었던 아픈 경험이 코치생활을 하며 선수들을 이해하며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국내 복귀 좌절 그리고 88년 만의 우승
2003년 메이저리그 시즌이 끝나자 삼성구단으로부터 코치직 러브 콜이 왔다. 그러자 그는 차와 집도 팔고, 아이들 학교도 모두 전학시켰다. 빨리 국내 팬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구단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언론에 계약이 파기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좌절했고, 갈 곳이 교회밖에 없었다. “좋은 팀 놔두고 떠나는데, 하나님 혹시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해 집 앞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다가 그는 두 번째로 출애굽기 14장 말씀을 받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왔다. 국제미아가 된 그의 상황은 변화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한국행이 결렬된 것을 안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 동료들의 탄원으로 구단에서 재계약을 요청해 왔다. 그는 자신을 다시 받아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그 나름의 철저한 파일을 만들며 어느 선수가 맡겨져도 성실히 지도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 공도 나눠 주며 팬 서비스하는 그의 모습에 지역신문은 ‘이만수야말로 진정한 프로’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는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88년 만에 우승하는 데 결정적 공로를 세우며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야구인으로서 최대의 영광이었고 기쁨이었다. 시카고 시내 100만 인파를 뚫고 그가 탄 이층버스가 지날 때마다 오색 색종이가 100층 빌딩에서 뿌려졌다.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그는 ‘천국이 바로 이 곳이구나’를 느꼈다. 구단에서는 3년 더 재계약을 요청해 왔다.
그는 “어려움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사인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기간이었으며, 고비마다 사인을 주실 때 방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훈련을 미국생활 내내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한국시리즈 우승과 또 다른 사인sign
2006년 시즌이 끝나자 한국 SK 와이번스로부터 수석코치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한번의 쓰라린 경험이 있던 그는 한국행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가 미국에 없어도 대신할 사람은 많다. 그러나 한국에는 아빠의 행복하고 재미있는 야구 경험이 필요하다”라는 아들의 강력한 권유에 마음이 흔들렸다. 더구나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설교 말씀이 출애굽기 14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미련해 주님께서 주신 사인을 또 깨닫지 못했음을 깨닫고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행에 순종했다. 삭스 팀 구단에서는 언제든지 지난번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돌아오라며 그의 한국행을 축하해줬다.
2006년 금의환향한 그는 눈치 보고, 즐거움 없이 연습만 하는 한국 야구문화가 어색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 주님이 예레미야애가 3장 말씀을 그에게 다시 주셨다. 그는 주님이 또 사인을 주신 것을 직감하고, 두 손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지도했고, 4년 동안 우승 3번, 준우승 1번을 했다. 문학경기장이 만원이 되면 팬티만 입고 돌겠다는 약속을 지켜 9시 뉴스 톱을 장식하기도 했을 만큼 팬 위주의 야구에 집중했다.
그 후 2008년 SK 와이번스와 재계약을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을 때, 은혜의교회 12월 말 주일예배 말씀이 예레미야애가 3장이었다. 기다리고 참으라는 말씀을 또 듣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인임을 확신한 그 다음 날 바로 3년 재계약을 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화가 나고 힘들었겠지만 내 계획이나 생각보다 훨씬 좋은 작전을 갖고 계신 주님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지금 있는 곳에서 주님께 영광 돌릴 일이 무엇인가 기도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0년 코리안 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피로가 누적되어 쓰려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15일간 병원에 입원한 그를 주변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은 평안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그를 치유해 주시며 베드로전서 4장 1~2절 말씀을 주셨다. “네가 입을 닫고 증거하지 않으면 돌들로도 증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성탄절 은혜의교회에서 18년 만에 신앙간증을 했다. 그래도 돌보다는 자신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다 보니 하나님의 사인을 놓칠 때가 많았고, 내 욕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작전을 수행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며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혹시 실수하신 것 아닙니까’하고 원망했는데, 돌아보니 주님은 절대 실수가 없으신 참 좋으신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한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며 성경 보고, 개인연습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선다는 그는 운동장에 서 있는 나무의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면 자신을 축복하는 것 같고, 새들이 지저귀면 찬송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올 한 해 동안 새롭게 다시 살아난 목숨이라고 생각하며 순종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예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에게 앞으로 하나님이 또 어떤 사인을 보내실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