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필립 얀시 Philip Yancey
50년 신앙생활을 종합 검진해 보고 깨달은 것
쉰이 된 올해(이 글은 Christianity Today 2000년 4월호에 실린 글임-편주) 나는 종합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엑스레이 촬영부터 시작하여 내 몸을 여기저기 눌러 보거나 찔러 보고 신체 일부를 떼어 조직 검사까지 하는 등 반평생 동안 내 몸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검사하고 치료해 주었다.
내친김에 나는 신앙과 영성 건강 검진까지 일정을 잡았다. 그리하여 원숙한 영적 지도자가 인도하는 묵상 수련회에 참가했다. 나는 며칠 동안 홀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귀를 기울일수록 목록은 점점 늘어났다. 앞으로 남은 일생 동안 실천해야 할 영적 실천 계획의 일부를 적어 보겠다.
하나님 앞에 세상의 문제뿐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도 들고 나아가라. 내 개인적인 평안과 환경, 기아, 정의와 같은 세상의 문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례를 볼 때, 그분도 세상에 계신 동안 비슷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다. 걱정이나 불안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믿음뿐 아니라 의심에 대해서도 질문하라. 나는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과거 근본주의 신앙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의심은 항상 품고 있는 반면 믿음은 가끔씩 반짝 생기는 편이다. 이제는 나도 이 패턴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이러한 영적 여정을 혼자 떠나려고 하지 말자. 나를 신앙의 안내자가 아닌 순례자나 심지어 낙오자로 여기는 동료를 찾아보라. 다른 많은 개신교 신자들처럼 나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갈수록 나는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구약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다. 둘째,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벗겨 내고 있다. 셋째, 바울 서신은 무엇보다도 신앙 공동체에 보내진 것이었다. 하나님을 따르는 단독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은 거의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한 것들만큼이나 선한 것들-자연의 아름다움, 건강, 격려의 말 등-이 삶 속에 깊이 침투하도록 하라. 나는 독자에게서 온 단 한 통의 신랄하고 비판적인 편지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열일곱 개나 되는 독자들의 격려 편지가 필요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자기 의심 대신 감사함에 젖어 있다면, 그 하루는 분명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스스로를 위해 삶을 단순화하라.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끊으라. 쓸데없는 메일, 광고 카탈로그 등을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으라. 내가 좀 더 용기가 있다면 텔레비전도 휴지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에릭 리들이 발견한 것을 배우라.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생이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면 선교사의 사명에서 일탈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누나에게 에릭 리들은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은 내가 빨리 달릴 수 있게 만드셨어요. 그래서 나는 달릴 때 그분이 기뻐하시는 걸 느껴요.” 무엇이 내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가? 우선 그것을 찾아낸 후 힘껏 달려 보자.
하나님처럼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자유, 자비, 긍휼의 편에 서라. 나는 언제나 만유의 주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와 자신의 불완전한 피조물 안에서 사신 그 겸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라고 말하는 한편,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우리에게 수없이 부탁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겸손함과 온유한 태도를 견지하는가?
부끄러워하지 말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 내 직업을 물으면 처음에는 얼버무리다가 나중에야 내가 쓰는 책들이 기독교 책인지를 말하는가? 출신 대학을 말할 때 왜 나는 일반 대학을 먼저 말한 후에야 기독교 대학을 말하는가?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완고하고 남을 쉽게 판단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는 비윤리적인 불신자들을 용납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그 말은 나 자신 역시 완고하고 남을 쉽게 판단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도 된다.
당신이 온전하게 되지 못하도록 상처를 준 사람들을 날마다 용서하라. 나는 우리의 상처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따라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계속 악감정을 품고 있는 한, 그 상처에 가치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치유를 가능케 해주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늦추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에게서는 내가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한들, 노화를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기껏해야 약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허나 영적인 건강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늘 새로워지며 더 건강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실천해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