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우은진 기자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전문직 중에는 방송국 PD가 으뜸이다. 말 그대로 요즘 방송국 PD가 되려면 고시 수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모두가 선호하는 직업이지만, 그만큼 직업 자체가 주는 업무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매일매일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시청률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차례 오르내린다. 한마디로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그럼 KBS 장수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일명 “광수 PD”로 유명해진 김광수 PD(사랑의교회 집사)는 어떨까? 시청률 보증수표 국민 MC 유재석과 함께하고 있으니, 매주 결과물로 떨어지는 시청률 조사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 역시 시청률에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웃음 짓는다. 단지 이제는 전처럼 조급해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바로 믿고 의지할 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원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률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몸부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CBS는 떨어지고, KBS에는 붙다
강화 석모도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인 할머니 덕에 온 가족이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의 할머니는 석모도 송가교회에서 새벽예배 종을 치던 분이었고,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린다. 어려웠던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기도와 가정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고, 그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무엇인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됐다.
과거 시골 교회에서는 1년마다 심령대부흥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이때 성령님을 체험하고 회개하곤 했는데, 그 역시 8살 무렵 부흥회를 통해 성령세례를 받고 뜨거운 회개를 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그의 집에서 초대 교회 같은 성령충만한 예배가 자주 드려졌었다. 여러 사람이 방언을 하고, 주 안에서 기뻐하는 등 뜨거운 분위기였다. 겉보기보다는 꽤 감성적인 그의 성품도 이때부터 비롯된 듯하다. 학업을 위해 인천 외삼촌 집으로 유학을 간 그는 누나와 할머니와 함께 셋이서 살았다. 그 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우연찮게 미군 군종병으로 가게 되었다. 미군 목사를 보좌하는 일이었는데, 미군부대 신우회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도 하고 성경도 봐야 했다. 그러나 그는 모태신앙인이기는 했지만 말씀이나 찬양, 기타 치는 것 등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신앙 훈련에 대한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평소 언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졸업 이후, 맨 처음 전공을 살려 중앙일보 기자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낙방했다. 또 크리스천이니까 CBS로 가서 방송선교를 하려고 지원했지만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역시 실패했다. 그는 의아해했다. 하나님을 위해 선택하려 했던 기독교 언론이었는데, 주님이 “NO”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친한 친구와 함께 1997년 KBS 시험을 보았고, 최종 면접까지 친구와 함께 올랐다. 그런데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이 친구에게는 준비된 예상 질문을 던졌고, 자신에게는 기독교와 유교의 차이라는 의외의 질문을 했다.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재치있게 답변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IMF를 만나 다음 기수를 뽑을 때까지 한참 걸렸고, 채용 인원도 줄어들었다. 지금은 일명 SKY대 출신이 아니면 방송국 PD를 할 수 없을 만큼 실력 있고, 쟁쟁한 친구들이 많다. 그는 자신이 PD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5년 동안 근무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CBS가 아닌 KBS로 인도하셨는지 그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이 주는 쾌락에 빠져 살다 ‘한방’ 먹다
진지하고 차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을 “잘 논다”고 말한 그는 예능에 관심도 많고 좋아해 스스로 예능국 PD에 지원했다고 한다. 여러 프로그램을 조연출 했던 그는 2006년 <뮤직뱅크>로 첫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그가 맡은 프로그램마다 반응이 좋았고, 동기생 중에서도 가장 빨리 앞서 나갔다. 그러나 세상에 휩쓸려 살았고, 술집을 전전하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쾌락의 생활에 빠져들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면 할수록 교만해져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흠뻑 취했다. 이 시절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잘 놀고 일도 잘한다고 칭찬했지만, 아내와의 불화는 잦았다.
그러다 2007년 국민 MC 유재석과 함께 <해피투게더 시즌3>를 시작하였다. 회사에서는 국내 최고의 메인 MC를 붙여 줬지, 또 그동안 맡은 프로그램마다 승승장구했던 김광수 PD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가 맡았으니 이제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매주 목요일 밤이면 잠을 설쳐야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시청률이 한 자리 숫자로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한 MC랑 같이 했는데, 프로그램이 잘 안 되면 외부에서 오는 압박이 굉장히 심합니다. 매주 성적표를 받는데, 다음날 아침 7시면 시청률이 인터넷에 뜰 때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처음으로 시청률이 안 나오는 큰 실패를 경험하고, 한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불성실한 그에게 하나님이 한방 먹인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 걸어 “죽고 싶다”고 말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대뜸 “너 요즘 큐티는 하니? 교회에서 봉사도 안 하지?”하며 그를 질책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다시 신앙의 기본을 회복하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신앙과 삶의 부조화를 겪으며 심적 갈등을 겪었던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주님 품 안으로 되돌아왔다. 주변의 믿을 만한 지인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유년부 교사 봉사를 하며 신앙생활의 기본을 하나하나 붙들었다. 그는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다고 느끼고, 울면서 기도하다가 “내가 너를 업고 가겠다. 네가 호흡할 때마다 함께하며, 너는 나의 기쁨의 아들이다”라는 주님의 위로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방송과 예능 안에 ‘기독교적 가치’를 담고 싶다
정확히 한 달 후 기존의 7명의 작가들이 모두 그만두고, 그는 새로운 작가들과 함께 새 아이템을 짰다. 바로 신길동의 한 허름한 목욕탕에서 녹화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리창으로 비치는 사우나가 있는 목욕탕이 드물었는데, 마침 이 목욕탕을 발견해 그 안에서 노래를 외울 때까지 못 나오게 했다. 목욕탕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옷을 벗고, 화장이나 겉치장도 지우고 들어가는 곳이다. 평범하고 가식없는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해피투게더 시즌3>의 목욕탕은 열린 공간이었다. MC들부터 편안한 복장을 하고 아줌마처럼 가발을 쓰는 등 스스로 낮아진다. MC들이 낮출 때 게스트들의 마음도 열려 더 재미있고 진솔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많았고, 그게 적중했다. 한번은 MC 유재석이 ‘광수PD’ 하며 말을 건 게 시발이 되어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렀다. 사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처럼 야외에서 촬영하는 PD들은 가끔 방송화면에 등장하지만, 실내에서 녹화하는 PD 얼굴이나 스태프들의 촬영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것은 드물었다. 그런데 목욕탕이라는 서민적인 장소가 그런 틀을 깨줬다. 그 코드가 맞아떨어져 기적적으로 시청률이 다시 두 자리 숫자로 치솟았다. 여기서 그는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환경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느꼈다.
그해 그는 <해피투게더>로 한국방송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 등을 수상했고, 아시안 TV 어워드상, 뉴욕TV페스트벌 등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로 국제상도 수상했다. 한마디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오죽하면 별명이 ‘김상복’이었다. 이제 그만 받으라고 주변에서 지어준 것이다.
신앙을 다시 회복한 그는 이때부터 방송과 예능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의 접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 약자에 대한 배려, 평등 등 기독교적 가치와 건강한 웃음과 메시지들을 방송에 넣고 싶어졌다. 오늘도 주님이 “너는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냐?”고 물으시는 것 같다. 삶의 진정성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면 크리스천의 빛과 소금의 역할, 복음전파는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신이 일터에서 엉망이면 본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천들은 일터에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공중파 예능 PD들의 종편행으로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그도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KBS에 남는 게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했다. 최근 예능국 책임프로듀서(CP)가 된 그는 더 바빠졌다. <해피투게더-시즌4>를 잘 준비해 이끌어가야 할 책임감도 막중하다. 늘 신선한 소재를 찾고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은 잘되면 성취감을 크게 느끼지만, 그 반대인 경우는 참 고통스럽다. 그래서 또다시 주변의 기대하는 시선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삶의 곳곳에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들을 조금씩 보여 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프로그램을 사유화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다. 그래야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훈련”, 너무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올해 사랑의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방송 일정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훈련받을 시간을 예비해 주셨다. 사랑의교회는 36세가 지나면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는데, 그는 피하고 피하다가 올해 41세의 나이에 드디어 돌고 돌아서 훈련에 들어왔다. 주님께 죄송해서 오리엔테이션 첫 시간부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는 『열정 40년』을 보면 제자는 훈련을 받고 안 받고에 따라 제자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단지 정예 훈련자가 되는 코스에 들어 온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을 통해 영적 근육이 더 단련되고, 믿음의 그릇이 커지고, 동역자가 생겨, 12명의 형제들과 삶과 체험, 은혜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그동안 머리만 컸지 가슴이 따뜻하지 않아 손발로 실천하지 못했던 그에게 제자훈련은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역사를 경험하도록 해주고 있다. 규칙적인 경건생활로 인해 하나님과 만나는 일이 습관이 되고, 매일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음으로 기쁨이 넘쳐 복음전파와 말씀 실천에 열심을 내게 되었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도 그는 방송 아이템을 얻기도 한다. 연예인들의 토크 프로그램은 잡다한 에피소드로 차별 없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제자훈련의 간증 시간에 정말 눈물 콧물 다 뺄 정도로 12명이 돌아가며 진실한 고백을 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런 삶의 변화와 회개, 진실한 고백을 방송 토크 프로그램에도 접목시키고 싶어졌다. 그래야 방송이 좀 더 깊은 이야기와 건강한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주일학교 봉사를 오래 해온 그는 초등부 아이들에게 매주 제자훈련 교재를 아이들의 시각에 맞게 고쳐 교재로 만들어 나누고 있다. 또 자필로 아이들 각자에게 매주 편지를 써서 나눠준다. 아들에게도 큐티한 것이나 설교 내용 중에서 감동받은 부분을 편지로 써서 준다. 밥상머리 교육처럼 모세와 같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도록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주며 기도한다.
성공과 유명세를 벗고, 진정성을 덧입어라
그는 방송국에서 수많은 연예인들을 보면서 인기와 유명세, 한마디로 성공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방송국에 지원하려는 사람 대부분이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어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는 성공이 진정성을 담아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좋은 뜻과 비전을 갖고, 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유명한 연예인이 부러울 것 같지만 사실 유명해질수록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도 없고, 명예와 인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기도 힘들다. 수많은 연예인이 인기를 향해 불나방처럼 돌진한다. 다른 사람들을 안 만나고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니 마약이나 자살도 쉽게 생각한다.
그는 “무엇보다 이들은 삶이 주는 평범함의 은혜와 기쁨을 잘 모르고, 봉사하면서 느끼는 기쁨도 알 수가 없다”며, “우리가 재물 때문에 근심하지 않고 덜 부자인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되돌아갈 본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PD라는 자리도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이다. 그러나 그는 계약직 작가들이나 매니저, 스태프 등 여러 사람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자 노력한다. 어려운 작가들의 급여를 올려주고, 옷이나 신앙 서적을 나누며, 가수 홍보에 애가 타는 매니저의 좋은 음반을 적극 밀어주기도 한다. 대신 <사영리>를 그들에게 주며 읽어오라고 말하고, 사랑의교회 새생명축제에 데려오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내 삶의 자리가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제자 닮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처음 CBS에 입사지원을 했을 때는 거창한 방송선교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공중파 방송인 KBS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안에 진정성을 담아 일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는 시편 62편 2절 말씀처럼 세상 속에 살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항상 주님과 동행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