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결혼 생활에도 사계절이 있다. 사람들이 환절기에 감기에 많이 걸리는 것처럼 결혼 생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려움을 만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농부가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도 결혼 생활에서 계절이 바뀌어 변화가 찾아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적응하여 발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혼과 부부는 만들어진다고 하는가 보다.
결혼한 지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은 신혼이나 그 어느 때보다 매우 값진 시기다. 오랜 동거를 통해 부담 없는 부부 생활이 이루어지며, 서로 고독하지 않도록 마음으로 깊이 의지할 수 있는 돈독한 관계가 맺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래 신은 구두일수록 발이 편한 것처럼, 결혼 생활도 오랠수록 부부 사이는 편안함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일체감이 있다. 이런 것들은 중반기에 들어선 부부에게 귀한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한 심리도 생긴다. 서로 가까이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떨어져 있기를 원한다. 배우자가 멀리 있으면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다가도 정작 가까이 와 있으면 귀찮아서 밀어낸다. 이러면서 부부의 성격도 바뀌는데, 쉽게 말하면 남편은 아내가 되고 아내는 남편이 되는 것이다. 아내는 갈수록 점점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이 되고, 남편은 갈수록 유순해지고 조용해지며 어딘지 모르게 여성다워진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바로 결혼 중반기다. 따라서 병들기도 쉽고 입맛을 잃기도 쉬우며, 어떤 면에서는 깨질 위험도 있는 결혼 생활의 여름과 가을은 봄과 겨울에 비해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고전을 보면 아내를 물로 비유하는 글이 더러 있다. 그중에도 아내를 우물에 비유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우물은 물의 근원을 의미한다. 우물이 막히지 않는 한 그 안에는 늘 차고 신선한 물이 담겨 있다.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릴 때에는 두레박줄의 길이와 우물의 깊이를 가늠하며 두레박을 내려뜨린다. 그리고 두레박이 떨어지는 소리와 팔에 감지되는 무게의 느낌으로 빈 두레박을 채워서 물을 길어 올린다. 게다가 우물가로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과의 연결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우물은 더욱 소중하다. 같은 우물물을 먹는다는 것은 한솥밥을 먹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우물은 이웃이 친근하게 지내는 커다란 구심점 역할을 했다.
우물이 물의 근원이 되는 것처럼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기쁨의 근원이며, 행복의 근원이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에게 기쁨의 근원이며, 행복의 근원이다. 목이 마를 때 우물이 없으면 갈증이 나고, 갈증이 심하면 죽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도 남편이나 아내가 우물의 생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가정은 기갈을 면치 못하고, 삭막한 사막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에게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빈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듯이, 추상적인 공간에서 한가득 행복한 실체를 만들어 단란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 필요한 만큼 넘치지 않게 생수를 길어야 한다. 때로는 두레박이 깨질 수도 있고, 간신히 길어 올린 물이 부족하거나 더러워질 수도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이제까지 함께 경험한 온갖 사연을 가슴에 품고 도리어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 즐긴다면 중반기의 부부 생활은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우물은 이제 우리 생활에 필요 없게 됐지만,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은 설렌다.
특히 중반기에 접어든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마음을 지켜야 한다. 단순히 정조를 지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마음을 지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부부의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않도록.
결혼 예식 마지막 순서에서는 결혼 서약을 한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기를 서약합니까?” 이때만큼은 어느 부부라도 일평생 전심으로 헌신할 것과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마음을 다른 데 절대 주지 않고 남편은 오직 아내를 위해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마음을 바치겠다고 서약한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이어야 하므로 그 관계는 감정에 근거를 둔 사랑이 될 수가 없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일생 동안 감정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례를 많이 서는 편이다. 그러나 한 번도 신랑과 신부에게 “지금의 그 순수하고 뜨거운 감정을 일생 동안 유지하기로 서약합니까?”라고 물은 적은 없다. 만약 그렇게 물었다간 아무도 서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말은 “일생 동안 두통을 한 번도 앓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까?”라는 말과 같다. 누구든지 얼마 지나면 감정은 식어 버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지어 사랑도 없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 식어 버렸다는 것이 곧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부부다.
“결혼 생활 몇 년 하고 나니까 도무지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사랑을 받는 것 같지도 않다. 반가운 것도 없고 섭섭한 것도 없고 항상 그저 그렇고 그렇다.”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중반기 부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부부 사이의 진짜 사랑이다. 결혼 생활이 중반기에 처했을 때 다시 한 번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나는 아내에게 내 마음을 주기로 서약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나는 일생 동안 내 남편을 향해서만 이 마음을 열겠다고 서약했다. 그러므로 다른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이다.
또한 서로 헌신하고 만족해야 한다.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도록 남편이 헌신해야 하며,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도록 아내가 헌신해야 한다. 쉽게 말해 부부는 서로 복되게 하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칭찬의 대상이 되도록 숨은 봉사와 희생을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에는 빠지지만, 결혼에는 빠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희생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결혼 생활만큼 비극적인 것은 없다. 남편이나 아내를 볼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이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럴 때 부부는 서로 희생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면 아내는 성장하지 못한다. 또한 아내가 보는 남편의 모습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처지고 마음으로부터 존경할 수 없는 약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아내가 남편을 위해 봉사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남편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자질이 무엇인지 고민해, 숨은 곳에서 서로 돕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좋은 남편은 아내가 만드는 것이며, 좋은 아내 또한 남편이 만드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중반기에 들어서면 젊었을 때의 매력은 사라지고, 살이 붙고, 주름살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이때 눈에 보이는 것에 치우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보아야 한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자기 아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게 빛나지도 않고 지나치게 아름답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매일의 양식이 되는 존재.” 겉으로는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고 별로 자랑할 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 아내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양식과 같다는 것이다. ‘만족’은 자신이 성장하고 훈련됐을 때 찾아오는 것이지, 상대방이 완전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남을 만족시켜 줄 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바라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