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안소영
88올림픽에서 탁구 최강이었던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내 전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양영자 선수. 그는 현재 성경번역 선교사인 남편과 함께 몽골에서 탁구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안식년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와 함께 삶 속에 끼친 말씀의 놀라운 영향력을 나눴다. 한마디 할 때마다 성경 구절의 인용이 이어지는 그의 말 전부를 지면 관계상 풀어놓지 못한 점이 아쉽다.
말씀을 삶 속에서 붙든 순간 중 기억나는 이야기를 소개해 달라_ 난 승부욕이 강했다. 어릴 때 지거나 마음대로 안 되면 라켓에다 분풀이를 하곤 했다. 집어 던지고 물고. 그걸 본 코치님이 나보고 교회에 나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아마 ‘얜 좀 수양이 필요하다’라는 마음이시지 않았을까. 그때 보니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라는 말씀이 있지 않나. 그 말씀을 외우고 다니면서 화가 날 때마다 생각했었다.
말씀 묵상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나_ 무명이었던 시절 1983년에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세계 1위였던 선수를 누르고 은메달을 땄었다. 그때는 정말 내 손을 누가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뒤 참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간염이 찾아오고 팔에 통증이 심해지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언론에서는 노장이 된 병자라 말하고, 국가대표에서도 제외됐다. 많이 방황했던 시기다. 그때부터 잠언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1일에는 1장을 2일에는 2장을 보면서 한 달을 주기로 묵상했다. 그러다 24장 16절에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蔑굔?말씀을 보고 힘을 얻어 다시 국가대표에 지원했다. 이미 탈락된 터라 새카만 후배들과 경기하며 밑바닥부터 올라가야 했지만, 1위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88올림픽 때도 현정화 선수와 함께 큐티하고 기도했었다. 말씀이 없었더라면 탁구를 계속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88올림픽에서 중국을 이겼던 모습이 기억난다_ 참 신기했던 것이 그때 우리 탁구 대표단이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그때 신명기를 묵상했는데, 중국이 마치 아낙 자손같이 느껴졌다. 사실 중국은 4천만의 탁구 인력이 있고, 탁구 학교까지 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우리가 이긴 것이다. 우리 선수단이 그들에게 다가가 전도지도 나눠 주었다.
우울증을 앓다가 말씀으로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_ 그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지도자의 꿈을 꾸었다. 대학원 가서 공부도 하고 싶었고, 나름대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코치가 되겠노라는 야망이 있었다. 난 정말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때는 들어오는 간증 요청도 거절했다. 바빴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쁨도 없고 만족감도 없고 공허하기만 한 것이다. 우울증 초기 증세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르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해가 떠 있는 것도 싫어서 종일 집에 있다가 밤에 살짝 나갈 정도였다. 나를 치료하던 정신과 선생님도 힘든 환자라 말할 정도였으니….
그때 큐티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시편과 예레미야를 묵상하면서 내 우울증의 원인을 알게 됐다. 나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모압 자손의 교만함이 내게 있었고, 욕심이 내 삶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런 나를 하나님이 건져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말씀 묵상을 안 한 날이 없다. 아이를 낳을 때도 언니에게 말씀을 읽어 달라 했다. 큐티는 정말 내 삶의 전부다.
말씀 묵상을 정말 하루도 거른 날이 없나_ 말씀의 능력을 아는 데 어떻게 말씀 묵상을 건너뛸 수가 있는가? 물론 말씀이 매일 꿀처럼 달지는 않다. 때로는 나를 향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말씀을 읽는다. 그냥 읽는 것에서 끝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러다 보면 말씀의 흐름 속에서 은혜를 받기도 한다. 말씀 묵상도 훈련이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오랜 기간 하다 보면 묵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_ 옛날에는 그냥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라는 마음으로 묵상했다. 그런데 요즘은 적용을 하려 한다. 이전에 한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보고 괴로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는 말씀에 나를 억누르고 그에게 점심을 사주며 다독거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원망이라는 감정이 해결되더라.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또 선교지에서 안면마비가 왔을 때의 일인데, 고린도후서 1장 4절 말씀을 통해 내 시련이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게 하려 함임을 깨달았다. 당시 난 정말 현지인들을 사랑하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런데 말씀을 보며 이들을 향해 사랑이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랑하려 했다. 그러자 안면마비도 풀렸다. 내가 인터넷도 안 되는 선교지에서 영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말씀 묵상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비전을 소개해 달라_ 남편이 하고 있는 성경번역이라는 사역이 정말 중요한 일임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열심히 도와야겠고, 지금까지 나는 탁구 사역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들과 말씀을 깊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