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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8월

준비하기 어려운 손님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인생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것, 중요한 것에 대해 가능하면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와 가깝게 훈련이나 연습을 해 두면, 정작 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행동으로는 연습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준비해 두면 무슨 일이 터졌을 때 훨씬 덜 당황할 것이고 실수도 적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차마 입 밖에 내기도 싫은 사건들까지 상상하면서, 그럴 경우 내가 어떻게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런데 기분 좋은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나, 불행한 일을 실감나게 상상하는 것은 상상하는 자체부터 쉽지 않다. 우선 생각하기조차 싫고, 상상하기 시작했다가도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 없다고 자위하면서 중단해 버린다. 그러나 정작 연습이 필요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 불행한 사건이라는 사실이 나의 딜레마다.
  그중에서도 준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죽음인 것 같다. 다른 불행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연습이 필요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전쟁에 대한 민방위훈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죽음에 대한 연습일 것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당당할 수 없다. 죽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이 어느 순간에 어떻게 내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나 그 앞에서 헤매고 방황하며 두려워한다. 흔히 죽음에 대해 ‘인간의 몸에서 영혼이 떠나고 육신은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뜻을 그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류 최대의 관심사가 영생이라면, 죽음이란 영생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그만이니, 영생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생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의 호출을 받는다.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 앞에 서 있으며 나의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죽음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과의 싸움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다. 아무도 남을 대신해서 죽을 수가 없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죽음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온 인생을 허비하는 것만큼 불행하고 어리석은 일이 없다.

 

  언젠가 들은 죽음과 영생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 여자의 태 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 태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너는 조금만 있으면 여기서 다른 세상으로 나갈 거야. 다른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여기에서는 네가 죽는다는 말이지만, 다시 새로 태어난다는 말과도 같아. 너는 그때를 대비하고 있어야 해.”  그 말을 들은 아기는 너무 슬퍼졌다.
  “아니야, 난 싫어. 여기가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좋은데. 난 지금 여기서 매일 이렇게 기분 좋게 사는데 내가 왜 다른 곳으로 가? 난 안 갈 거야!”
  그렇지만 결국 몇 달 후에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뜨니, 아기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 따뜻한 사랑이 담긴 눈길, 아름다운 손길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세상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야, 참 좋다.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데 왜 내가 안 가겠다고 했을까? 내가 참 바보였구나! 이렇게 좋은 세상을 두고 엄마 뱃속이 뭐가 좋다고 거기서 안 나오겠다고 바동거렸을까?”
  시간이 흘러 아기는 자라 어느덧 유년기의 기쁨을 즐기게 되고, 청년기의 흥분과 낭만을 누리면서, 이윽고 결혼을 하고 자녀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은 계속 흘러 장년의 힘을 가지게 되고 중년의 전성기를 지나 노년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또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거예요.” 그는 또 한 번 슬퍼졌다. “가기 싫어요. 이 세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해요. 새벽의 아름다운 하늘, 해질녘의 노을, 달과 별빛을 나는 사랑해요. 날씨가 추워지면 불가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요. 겨울에 눈을 밟을 때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좋은데요. 나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다시 죽고 싶지 않아요.”
  또다시 바동거린다. 그러나 이번에도 피할 수 없는 일, 그는 드디어 죽고 만다. 그가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까? 아마 그는 어머니의 품보다 더 포근하고 따뜻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온화한 눈길을 느끼며 또다시 후회했을 것이다.
  “내가 바보지. 세상에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렇게 좋은 곳에 안 오려고 발버둥 쳤을까?”


 죽음의 날이 오면, 나는 죽고 싶다고 애원하게 될지 살고 싶다고 절규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내 삶에서 죽음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이 아니라, 고대하고 기다리던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