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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손양원 목사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손 목사는 3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여수로 내려가, 나병 환자들을 위한 생활 터전인 애양원을 세웠다. 그리고 환자들과 함께 생활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천황을 신이라고 인정하고 신사 앞에 절하라는 일본의 강압에 항거하다가, 해방되던 해까지 5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해방이 되고 애양원으로 돌아온 지 3년이 채 되기도 전,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아니꼽게 생각하던 한 학생이 이들을 끌고 가서 구타하고 고문을 하면서, “너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풀어 주지만, 안 그러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손 목사의 두 아들이 끝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자 이 학생의 패거리는 이들을 총살해 버렸다. 교회 마당에서 1,00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던 자리에서 손 목사는 하나님께 열 가지를 감사했다.
  “하나,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둘, 수많은 성도 가운데 이런 귀한 보배로운 아들들을 나에게 맡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셋, 삼남삼녀 중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넷,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섯, 예수 믿다가 병들어 죽는 것도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순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섯,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큰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곱,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하게 하고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일으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덟, 두 아들이 순교함으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겨날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아홉,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쁨과 여유 있는 믿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열, 나에게 주신 이런 과분한 큰 복은 부모님이 수십 년간 새벽마다 눈물로 부르짖던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의 기도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손 목사는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아들들을 죽인 학생이 구속되지 않도록 간곡히 선처를 구하고 그를 데려와 양아들로 삼았다. 이러한 사랑은 결코 흔한 사랑이 아니다. 용서가 어려운 만큼, 사랑 역시 내면 깊숙이 숨겨진 집착, 이기심, 육신적 동기, 교만으로 가득 찬 자아를 버려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사람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없을 때, 다시 말해 자신을 사랑해 줄 대상이 희미할 때 두려움과 고독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주는 완전한 사랑은 어떤 것일까?

 

  눈썹이 흐려 항상 연필로 정교하게 그려 넣어야만 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남은 물론이고 남편과 가족들 앞에서도 맨 얼굴을 절대 보이지 않았던 그녀는, 어느 날 고된 여행길에서 돌아와 피곤에 지쳐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본 그녀는 화장이 정갈하게 지워진 가운데 눈썹만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약점을 말없이 감싸 준 남편의 사랑과 배려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잘못과 약점을 덮어 주고 상처를 감싸 주며 용서하되, 과거를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진정한 포용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은 그 의미를 갖는다.

 

  살다 보면 가정 문제, 경제 문제, 건강 문제, 정신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놓이게 된다. 과거의 어떤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간의 근본적인 불행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에덴의 완벽한 자유와 행복을 깨버린 성경의 이야기가 그 두려움을 전해 준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벗었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했으며, 오해와 미움으로 갈등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 그 후손인 우리가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고,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우리의 약점과 죄에도 불구하고 죽음보다 강한 힘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지배하는 거짓 진리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완전한 사랑을 힘입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그러면 우리를 진정한 자유의 길로 인도하는 구원은 무엇일까? 교회 나가서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는 것?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을 그 정도로만 알고 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에서 건져낸 자녀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으로 완성시켜 나가신다. 이것이 구원이다. 그 과정에는 때로 어려움도 있고, 좋은 일도 있다. 그렇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눈앞의 위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인생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분노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현실 속에서 염려와 불안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겠는가? 완전한 사랑은 완전한 힘을, 그리고 우리의 꿈이 펼쳐질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한다. 원대하면서도 비밀스러운 힘, 놀라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어지는 완전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은 모든 두려움과 수치와 염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노예가 노예 된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삶의 자유를 누리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힘이 회복되듯, 완전한 사랑으로부터 주어지는 자유는 곧 세상을 이기는 완전한 힘을 가져다준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은 형벌과 맞물려 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더욱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가득 찬 후로부터는, 자신의 인생에서 티끌만한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나눠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진다. 예수님의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받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전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따뜻한 아침 햇살을 북쪽 김정일 집 앞마당에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성도의 가정에나 똑같이 비춰 주신다. 그분은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에도 때가 되면 비를 내려 주시며, 우리나라에도 적당히 비를 내려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로 너희도 사랑하거라.”
 이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는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요, 자기를 희생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랑이요,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는 사랑이요, 열번 백번 똑같은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남자와 여자가 첫눈에 반한 순간부터 그 사랑은 길어야 3년, 짧게는 18개월 간다고 했다. 잠깐의 사랑 속에서도 우리가 갈등하는 것은, 그 사랑이 영혼으로 나누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닮지 못한 채 단순히 감각의 틀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은 사람은 그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분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력자들도, 현재의 일도 미래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 자녀 안에 항상 완전한 사랑의 힘으로 존재하신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이미 승리가 약속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