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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고난에도 침몰하지 않는 축복을 누리세요”

과월호 보기 김익겸

‘사랑의 원자탄’ 애양원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대연중앙교회). 나환자들을 향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맞아들인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한국 기독교에 ‘사랑’이라는 글자를 깊이 새겨놓았지만, 그에게는 고난의 가족사였다. 그 엄청난 고통을 두 눈과 가슴으로 경험했음에도 그는 일흔일곱 해가 되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삶을 이어간다.

 

손동희 권사님 개인이 아니라 손양원 목사님의 딸로 더 유명하다. 그것 때문에 살면서 힘든 적은 없었는가_ 왜 없겠나. 어떤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나를 ‘천사’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천사 받들 듯이 하는 것에 거부 반응이 오기도 한다. 아버지의 영광을 내가 받는 것 같아서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순전히 아버지 덕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부담스럽다. 가는 곳마다 나를 천사처럼 생각하는데 정말 나는 별거 아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내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기에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송스러울 뿐이다.

 

손 목사님과 오빠들의 고난이 곧 권사님의 고난이었을 것 같다. 지금 고난의 과정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_ 기독교 신앙은 고난으로 달성된다는 게 아버지의 신앙이었다. 오빠들도 내가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다. ‘왜 나야’, ‘왜 우리야’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방황도 했다. 어지러운 그 시절에는 잘 몰랐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더라.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순교자 가정으로 세우시고 그것으로 믿음의 표본을 만드셨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도 소풍을 안 갔으면 오빠들처럼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두시고 역사적인 증언자로 삼으신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책도 쓰고 간증도 하고 다닌다. 그게 내 사명인가 보다.

 

아버지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_ 나는 사랑의 화신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사랑의 천사가 아니다. 다들 그렇듯이 나도 누굴 미워하기도 하고, 용서가 안 되기도 한다. 두 오빠를 죽인 사람을 아버지가 양아들로 맞아들이기로 했을 때 나는 펄펄 뛰며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1,2계명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서 고생하고 너희도 고생했는데, 하나님의 똑같은 명령인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어찌 어길 수 있겠니.” 아버지의 신앙과 고집을 알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당시 나는 오빠들을 죽인 그분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을 알았는지 암으로 죽기 직전에 나를 찾아와 울면서 용서를 빌더라. 서로 부둥켜안고 엄청 울었다. 그때서야 모두 용서가 되었다. 울다 보니 그 옛날 일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그때까지 용서하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_ 아버지는 내가 여덟 살 때 감옥에 들어가 5년 만에 나오셨다. 그 뒤 나는 애양원을 떠나 순천에서 오빠들과 학교를 다녔다. 애양원에 가더라도 아버지가 늘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는 두 오빠에 대한 정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두 오빠를 죽인 사람을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양아들로 삼은 것이다. 그런 데다 아버지가 양아들을 사위 삼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더 미운 맘이 들기도 했다.

 

오빠는 좌익 세력에 의해 죽고 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고생을 하셨는데 공산당과 일본에 대한 마음은 어떤가_ 북한과 일본 어느 쪽이 더 미운지 스스로 물어본 적이 있다. 둘이 똑같이 밉더라.(웃음) 하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많은 순교자가 있었기에 이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순교의 씨앗이 살아 움직인 것이다. 가족의 고난으로 개인적으로 방황도 했지만 지금은 감사할 뿐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께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제 치하와 6.25를 거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를 많이 느낄 것 같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런 차이가 느껴지는지_ 당연하다. 그때는 고난의 시대였다. 신사참배로 어려움 겪고 전쟁 때문에 이리저리 피란 다니고, 그래서 제대로 믿지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던 시대였다. 당시 기도는 피눈물 나는 기도였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기도였다. 요즘은 그런 기도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신앙은 그런 고난이 와야 더 깊어질 수 있고 하나님께 목을 맬 수 있다. 하나님께 안 붙으면 안 되던 시기였다. 그런 것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자세가 다르다고 본다. 이미 죽음 직전까지 갔던 신앙의 사람들이 무서워할 게 뭐 있겠나. 지금은 당시에 비하면 평범해진 시대라 그런 마음을 잘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면_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참 좋다.

요즘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_ 지금은 어려움 모르고 살기 쉬운 시대다 보니 내 자식 일류대 입학시키고 남편 사업 번창하고 돈 잘 벌거나 승진하는 것에 행복의 기준을 두는 것 같다. 그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축복 맞다. 하지만 환난, 곤고 닥칠 때 그걸 이길 힘을 주시는 게 진정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역경을 통해 하나님 진리, 사랑을 찾아내는 힘이 바로 축복이다. 앞선 세대가 이기고 나온 게 그 힘 때문이었다. 요즘 세대가 세상에 침몰되지 않는 그런 축복을 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