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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축복의 씨를 뿌린 세계 최고의 부자, 록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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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세계 최고 부자의 대명사 록펠러,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십일조 생활을 한다. 둘째,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셋째,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록펠러는 100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특히 십일조 생활은 여섯 살 때 처음 용돈을 받은 후부터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지켰다. 그리고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빌 게이츠보다 3배나 많은 돈을 번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의 부자로 살았다.
록펠러는 미국의 격동 시기인 골드러시(gold rush)와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자랐다. 열여섯 살 무렵, 곡물 위탁판매 회사에 취직한 그는 밤새 일에 매달리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3년 후, 그가 동업자와 차린 위탁판매 회사는 남북전쟁으로 날개를 달았고, 곧이어 찾아온 오일러시(oil rush)를 틈타 정유회사를 설립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석유만 생각한 결과 그의 회사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정유업계의 95%를 점유하게 되었다.
록펠러의 나이 50대에 이르자, 그는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전담 직원을 40명이나 둘 만큼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병마가 그를 찾아왔고, 언제나 양심에 따라 일한 그를 세상은 악덕 기업주로 비난했다. 그제야 그는 그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 뛰어왔을 뿐,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록펠러는 자선사업가로 변모했다. 록펠러 의학연구소와 록펠러재단을 비롯하여 시카고대학 등 종합대학 12개와 단과대학 12개를 사회에 바쳤고, 4,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올렸다.
그는 “엄청난 재산은 전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쓰라고 주신 씨앗이며,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전 세계에 축복의 씨를 뿌리며 나눔의 행복을 누렸던 록펠러, 그는 진정한 하늘의 부자였다.



<유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