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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수십만 명의 영혼을 주 앞으로 이끈 미국의 위대한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 그가 4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는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와 7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주위에서는 아이들을 입양 보내라고 설득했지만, 어머니 벳시 무디는 모든 것을 오직 주께 간구하며 끝까지 아이들을 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앙생활에 대해 엄격하게 교육했는데, 특히 매일 성경을 읽도록 한 정성은 무디로 하여금 생애 내내 말씀을 간직하며 살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디가 17세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상경했을 때만 해도 그는 구두 판매원으로 일하는 재미에만 빠져 있었을 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런 무디에게 어느 날 에드 킴벌이라는 주일학교 교사가 직접 찾아왔다. 킴벌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고, 이를 통해 무디는 마침내 회심하게 된다.
시골 출신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무디는 사실 구두 판매원으로서 투박하고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호소력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의 말솜씨에는 신기하게도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고, 덕분에 그는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심한 무디는 이러한 말솜씨를 복음을 전파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일학교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어린이들을 전도했으며, 남북 전쟁을 겪으면서부터는 영혼 구원을 위한 설교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가 말씀을 선포할 때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적이 끊이지 않았다. 무디는 이 외에도 여러 교육 사역, 복지 사역에 힘썼는데, 이를 통해 ‘케임브리지 7인’이라 일컫는 유명 중국 선교사들이 배출되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열매가 맺어졌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지만, 오직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복음 전파 사역에 뛰어들었던 무디는 1899년, 고향 메사추세츠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추도예배에서 딕슨(A. C. Dixon) 박사는 그를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D. L. 무디가 생전에 기적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분 자체가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유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