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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우리는 무엇을 기적이라고 하는가 <행복한 라짜로>(2018)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시대를 알 수 없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 이 마을 사람들은 델 루나 후작 부인의 소작농으로 살고 있다. 담배 농업을 하며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 중 가장 묵묵히 일하는 청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사람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순박한 청년이다. 어느 날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는 어머니에게 반항해 자작극을 꾸미고, 라짜로는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모든 일이 들통나면서 마을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라짜로를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난다. 

<행복한 라짜로>는 목가적인 이탈리아 시골 풍경과 아름다운 이미지 너머에 있는, 여전히 계급 사회 속에서 희생되는 성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계급 사회의 부조리와 비인간성을 다룬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수두룩하지만, <행복한 라짜로>는 우화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방식을 사용해 결코 변하지 않는, 오히려 지능적으로 변화한 계급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그 몽환적이고 마법 같은 표현 방식을 흔히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심각한 사회적 변동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울 때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행복한 라짜로>는 아름다운 소도시의 풍경과 자연 경관의 경이로움에 앞서 그 이면에 착취되고 소비된 사람이 있음을 서늘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행복 라짜로>의 가장 큰 울림은 먹이 사슬의 맨 아래 있으면서도 결코 타인은 착취하지 않는, 죄의 악습을 끊는 작업이 낮은 자로부터 시작됐다는 데에 있다. 성경에 등장한 두 명의 나사로의 모습이 절묘하게 겹친 ‘라짜로’는 모두에게 착취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단 한마디의 불평도 거짓도 없다. 그는 언제나 약자 옆에 머물며 손과 발이 되고,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마법 같은 일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세상을 구하는 거대함에서 시작하는 영웅의 활약이 아닌, 작은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착취의 끈을 끊으며 타인의 고통을 마음으로 아파하며, 그를 위해 작은 무언가를 하는 섬김을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적이라고 생각할까. <행복한 라짜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며 보이지 않게 섬기는 수많은 라짜로들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