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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재봉틀로 꿈꾸는 복수<드레스 메이커>(2015)

과월호 보기 박일아(영화 평론가)

 호주의 대표 여성 작가 로잘리 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드레스 메이커>는 동갑내기 소년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고향에서 쫓겨났던 틸리(케이트 윈슬렛)가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벌이는 복수극이다.
성공한 틸리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첫 번째 이유는 마을에 혼자 남은 엄마 몰리(주디 데이비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틸리가 마을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정신이 불안정해진 몰리는,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고 진실을 알기 위함이었다. 틸리는 마을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 주며 환심을 사고 진실을 알아내려 했으나,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다.
한편, 마을 사람들이 미친 여자 취급하는 몰리를 돌봐 준 테디(리암 헴스워스)는, 틸리의 진심을 알아보며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틸리는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였지만, 줄곧 들어 온 ‘(살인했으니) 저주를 받았다’라는 트라우마를 떨쳐 내지 못하고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영화의 2/3지점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틸리가 충격으로 소년의 사인(死因)을 기억하지 못하자, 누군가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 거짓 진술을 했고, 누군가는 본인의 수치를 덮기 위해 수사를 대충 마무리했으며, 누군가는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협박했다. 마을 어른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틸리를 희생양 삼았던 것이다.
이 영화의 힘은 ‘이제 틸리가 누명을 벗고 연인과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 데에 있다. 인생은 진실이 밝혀졌다고 행복한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악인의 잘못이 드러났다고 위선과 탐욕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피해자 틸리는 연인과 엄마를 잃었고, 다시 시작된 2차 가해로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틸리는 이런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본인의 재능인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쓰레기는 불태우는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틸리가 트라우마와 강박을 견디며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25년이 걸렸다. 사람마다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방법은 다르다. 그러나 틸리처럼 저마다 허락된 재능(gift)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실현할 수 있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