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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큐티나눔방2 - 주님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과월호 보기 장경선 성도

언제부턴가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30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조금씩 철이 들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 「날마다 솟는 샘물」로 QT를 하면서 나의 영이 조금씩 자라고 있나 보다. 어쨌든 이런 은혜가 감사하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준비하며 깨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극동방송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저 이렇게 살다가 왔어요”라고 고백해야 한다는 말씀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런 내가 이상한지 17개월 된 아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을 껴안고 고백해 보았다. “하나님, 저 성언이 엄마 이렇게 살다가 왔어요.” 부끄럽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으로 보자면 차마 입조차 뗄 수 없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사도 바울의 고백은 얼마나 멋진가? 나도 이런 고백을 하고 싶다. 그러기엔 아직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 안락하고 편안하게 부를 누리며 살고 싶은 나, 주기보다는 사랑받으며 칭찬받고 싶은 나…. 매일 선한 싸움으로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려고는 하지만 무너질 때가 많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바울의 고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이 위로가 된다. 의의 면류관은 사도 바울에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자. 역시 정답은 주님과 나의 관계, 사랑의 문제인 것이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사모하며 달려가고 싶다. 17개월 된 우리 아들과 배 속의 둘째를 주님 보시기에 기쁘게 잘 키워 놓고, 내게 주신 사명 또한 잘 감당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서고 싶다.
그때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만 작은 소리로라도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 나의 하나님! 저 이렇게 살다가 왔어요.” 하루하루 그 순간을 생각하며 달려가고 싶다. 일상의 권태가 나를 누를 때, 악한 영의 세력에 사로잡힐 때, 아들의 잠투정으로 힘들고 지칠 때, 점점 불러 오는 배가 부담스럽고 버거울 때, 남편이 내 마음 몰라줘 서러울 때, 주님 만날 그날을 사모하며 다시 힘을 내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