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꿈꾸며 동생과 뉴욕 행을 결심한 에바(마리옹 꼬띠아르). 그러나 여동생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하고 홀로 남은 에바는 브루노(호아킨 피닉스)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신실했던 그녀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올란도(제레미 레너)는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길 제안한다.
<이민자>는 1921년 뉴욕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미국의 어두운 이민사를 무게 있게 담아낸다. 무엇보다 고전 멜로드라마 장르를 떠올리게 하는 극의 구조 위에 인물 간의 결핍과 욕망의 관계를 섬세하게 입혀낸 솜씨가 탁월하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번에도 여전히 뉴욕이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전작 <비열한 거리>, <위 오운 더 나잇>을 경유하며 그가 바라본 뉴욕은 이중적이고 황량한 공간인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실한 내면의 관계를 관찰하는 무대다. 한마디로 그의 영화에서 뉴욕은 거대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의미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멀리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브루노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는 미국이 자유와 행복을 향해 손을 뻗는 이민자들에게 등 돌리고 있는 차가운 도시임을 설명함과 동시에,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민자를 배척하는 철저한 이기심을 상징한다. 당시 수많은 입국 대기자들처럼 <이민자>의 인물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은 엄청난 부와 성공이 아니라 가족을 이루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단순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집단에도 섞일 수 없는 에바, 비뚤어진 애정으로 에바를 바라보는 브루노, 꿈을 찾아 끝없이 부유하는 올란도의 모습을 낳으며 미국 사회를 떠돌게 한다.
한편 <이민자>는 멜로드라마 형식을 사용해 이민사회의 고뇌와 상처를 감정적으로 공감하게 한다. 감정의 과잉이 때로는 비난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감독은 오히려 진실한 감정의 과잉만큼 강력한 공감은 없다고 본다. 더불어 엇갈리는 미묘한 이들의 감정선, 고해성사 장면에 사용되는 푸치니, 구노, 바그너의 곡 역시 근엄함과 숭고함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