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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기막힌, 그러나 따뜻한 동행 -<춘희막이>(2015)

과월호 보기 장다나(영화 평론가)

<춘희막이>는 본처와 후처의 관계로 40년을 함께 살아온 두 할머니의 이야기다. 2009년 OBS 휴먼 다큐멘터리 <여보게, 내 영감의 마누라>를 통해 두 할머니의 삶을 담았던 박혁지 감독이 방송에서 담지 못했던 질문, 즉 왜 이들은 함께 사는지, 서로에 대한 진정한 마음은 어떤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2011년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춘희막이>의 독특한 점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외적 형식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두 할머니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관객의 심리에 끌려가지 않고 최소한의 정보, 약간의 속내 정도만 던져 줄 뿐 오로지 밥을 먹고, 씻고, 일하고, 화내거나 웃는 두 할머니의 단조로운 일상을 관찰한다.
이런 방식은 본처와 후처 관계에서 오는 선입견, 통념적인 사회적 시선과 위치를 조용히 사장시키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여성’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어쩌면 생선을 발라 주고, 안약을 넣어 주고, 서로 옷깃을 만져 주는 일상 자체가 무엇보다 진정한 이들의 삶이기에 어떤 말이나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혁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일전에 가족을 소재로 한 TV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이 있는데, 이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사회적 계약과 혈연으로 규정된 가족을 가장 친근한 인간관계로 여기는 이 사회의 믿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실제 마음 깊은 곳의 진심과는 분명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처와 후처 즉, 가족이란 테두리의 외부에 위치한 두 할머니가 보여 준 유대 관계는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뇌리에 남는 이미지는 바로 집 툇마루에 있는 유리문이다. 할머니들은 그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각자 일을 하거나 서로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어쩌면 그녀들 사이에 본의 아니게 부여된 본처, 후처라는 사회적 명명이 보이지 않는 담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지만 그 투명함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기나긴 역사와 한 시대의 희생이 돼야 했던 여성이라는 숭고한 이름을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