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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5월 큐티 나눔방

과월호 보기 서송주 집사

[나눔 2] 서송주 집사

 

<금송아지 부수기>

‘이제 누구도 홍해를 건넜던 승리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 홍해를 건너기만 하면 우리 땅이 멋지게 펼쳐질 줄 알았다는 소리들… 한숨들… 우왕좌왕 소란한 군중 틈으로 술렁거리는 말들이 맘을 어지럽게 한다. 지긋지긋한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여기 광야에 와 있다는 것이 갑자기 버려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이런 상상이 낯설지가 않았다. 최근 2년 반 동안 큰 은혜 가운데에도 시험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남편의 회사 문제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줄 알았지만 실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응답되지 않는 세월인 것 같았다. 무리한 기도제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자존심 부서지는 상황만 반복되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갖고 있던 것들을 다 정리해 가면서 십일조와 건축헌금은 물론이고 작은 교회들을 후원하며 섬겼는데, 왜 날 외면하시는가라는 서운한 맘이 유치하다고 느끼면서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눈을 확 깨게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하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고 했다. 자신들을 위한 신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과 출애굽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기 원하셨다. 그런 하나님을 높이거나 갈구함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신을 직접 만들려는 의지는 분명 교만이었다.
나도 내 원대로 되지 않자 원망을 감추며 차선의 방법을 찾아 아쉬움을 채우고 위로를 얻으려 했다. 새로 만든 통장, 정신없이 사 모으기, 시험에 떨어진 딸아이 서둘러 새 학원에 등록시키기, 사업으로 고전하는 남편을 취직하라며 닦달해 맘 흔들어 놓기…. 이러한 것들이 금송아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나는 안다. 응답 없는 하나님이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골라서 응답하지 않으신다며 한 달이 넘게 아예 맘이 뒤틀려 있었다. 어느새 나를 닮은 흉물스런 금송아지를 깊은 골짜기 가운데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떠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셨다. 이제 나는 내 방식대로 응답하시고 보상해 주시길 구하는 우상을 부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내 생각을 내려놓고 들어야 했다. “모세가 간구하는 소리, 예수님의 중보기도 소리와 눈물이 제가 만든 금송아지를 다 녹여 버리길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