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경애 집사(남현교회)
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교회에 나가야 했다. 교회를 하루라도 빠지는 날에는 어머니로부터 빗자루가 부서지도록 맞았다. 어릴 때는 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정말 원망 많이 했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일에 여행도 가고, 수영장도 가고, 롤러스케이트장도 가는데 난 거기에 끼지 못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학교, 집, 교회만 왔다 갔다 했다.
드디어 대학교에 들어가 이제는 마음껏 놀 수 있나 싶었는데, 학과 선배를 너무 잘 만난 탓에(?) 선교단체라는 곳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선교단체에서 훈련받는 것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쉽사리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한 해, 두 해 지나가고 어느덧 리더로 세워진 나는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기쁨과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동안 내가 쌓은 믿음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회는 정말 냉혹하고 혹독한 세계였다. 4년 동안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당당히 외치기가 어려웠다. 입사하자마자 대뜸 “술 할 줄 아냐”고 물어보며 당혹하게 만드는 사람들…. 믿지 않는 이들과 매일 부대끼며 믿음이 점점 흔들렸다. 시련이 오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난 그러질 못했다. 그땐 정말 모든 게 싫었다. 그 뒤로 5년이란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담을 쌓아 버렸다.
큐티하는 것도 버겁고,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고 싶으셔서 내게 능력을 주셨는데, 그것을 내가 거부하는 바람에 정말 능력 없는 자가 되어 버렸다. 철저하게 무너지고 나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4개월 전, 교회 청년부에서 예배 시작 전 찬양을 하는데 메말랐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게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울었고, 5년 동안 내 삶을 헛되이 보낸 게 후회스러워서 울었다. 하나님께 지난 잘못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켜 주심을 경험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날 완전히 버리시진 않은 모양이다. 계속 정상에 있으면서 교만해졌던 나를 5년에 걸쳐 철저히 무너뜨려 낮추시는 것이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었나 보다. 하나님이 훗날 나를 위해 더 큰 것을 계획해 놓으셨기에 아마 일찍부터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경험케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건대 대학 4년 동안의 신앙 훈련이 내게 정말 소중했을 뿐 아니라, 그 후 방황했던 5년 동안의 시간도 소중하고, 앞으로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 나갈 시간도 아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난 <날마다 솟는 샘물>로 큐티를 다시 시작했다. 민수기 31장을 묵상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도 부분적으로만 순종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하나님께 잘못을 회개하고,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결단하며 기도했다. 또한 특별히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로하시고, 두 분과 나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요즘 또 하나의 기도제목이 있다. 비록 노래는 못하지만 찬양이 좋아서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고 싶은 30세 이전 청년들이 각 교회에 100명이 세워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각 교회에 청년 오케스트라 단원 30명이 세워지도록 기도한다.
가능할까? 이루어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겨 보는 거다. 어쩌면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고 계속 기도하는 거다. 이건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믿는다. 정말 이루어질 수 있다.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않은가? 만약 우리 때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에 우리 자녀들이 커서 각 교회 청년부 성가대원 100명 중 한 명이 되고, 청년 오케스트라 단원 30명 중 한 명이 된다는 게….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