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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큐티나눔방 - 나의 삶을 움직이는 QT

과월호 보기 박미선 집사

하나님께 순종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이 더 괜찮겠지’라며 넘겨버린 일들이 많았음을 QT를 통해 깨닫게 된다. 에스겔서의 산당에 대한 파멸 예언을 통해 ‘유다의 선한 왕들조차도 산당만은 제거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묵상했다. 산당예배는 백성의 오래된 관습이었고, ‘이것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결국 그들에게 올무가 되어 산당을 없애지 못했다. 이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갖고 있던 자기 변명과 합리화하는 습관을 주님 앞에 철저히 내려놓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오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앞에서 지쳐갈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분명한 목적으로 여전히 역사하시는 분임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포도나무와 두 독수리 비유를 통해 유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이 아닌 애굽에 의존하고 손을 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겔 17장). 결국 유다가 살 수 있는 길은 바벨론에 항복하고 섬기는 일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뜻에는 유다 민족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역시 이해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주어진 현재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선하신 뜻이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산행을 하면서 나는 산 곳곳에 있는 무덤들을 바라보곤 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요한복음 19장 42절(…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과 20장 1절(안식 후 첫 날) 사이의 빈 여백이 눈에 들어와 예수님의 무덤 속 3일간을 묵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절망과 패배에 빠져 있는 동안 예수님은 그 무덤 안에서 승리와 부활의 노래를 준비하고 계셨다. 예수님의 무덤은 패배로 보이지만 사실상 승리이고, 절망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소망이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패배와 절망 앞에서 무너져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사실상 예수님 안에서는 그것이 승리와 소망의 터전이기 때문인 것을, 주님은 말씀으로 고요하게 위로하시며 소망을 불어넣으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는 말씀을 붙잡고, 세상 한 가운데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서 주어진 현재에 충실함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