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영주 집사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나다나엘이 하나님을 묵상하던 ‘무화과나무 아래’(요 1:48)는 내가 큐티하는 장소, 곧 안방에 있는 내 책상 앞이다. 나는 그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사무엘서를 묵상하며 사울, 다윗, 압살롬의 모습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으로 신접한 여인의 집까지 찾아 갔다. 그는 여인에게 사무엘의 영을 불러 달라고 했고, 여인이 사울 왕의 정체를 알고 두려워하자, 그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삼상 28:10)고 말했다. 사울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접한 술법’으로 자신의 다급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애쓰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께 불순종해 버림받은 사람의 비참한 말로이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의 모습에서는, 자식 교육에 실패한 부모의 모습을 봤다. 다윗은 장남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욕되게 해도 징계하지 않았고, 암논을 죽인 압살롬에게 처벌도 용서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결국 이 모든 일에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역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심지어 아버지의 첩들과 동침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이 본문을 보며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 29:15)는 말씀이 생각났다.
한편 에베소서를 묵상하면서 만난 바울은 복음 전도 열정에 사로잡힌 자인 동시에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삼층천에 갔다 왔으면서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후 12:2)는 표현으로 마치 다른 사람이 경험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는 지극히 큰 계시를 받았지만 남에게 자랑하지 않았고, 오직 주 안에서 낮아지고 겸손하고자 했다.
이처럼 모든 성경 말씀은 내게 지혜의 보고이며, 큐티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정리하고 내려놓는 귀한 시간이다. 물론 모든 큐티 시간이 항상 은혜로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밋밋하게 별다른 감동이나 깨달음 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조금 지루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고 성령님은 변함없으신 분이시다. 내가 큐티하기를 다소 귀찮아하는 날이라도 늘 나와 교제하는 그 장소, 그 시간에 와 계시며, 말씀을 가지고 앉으면 주님은 틀림없이 은혜로 채워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