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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내겐 너무 특별했던 크리스마스

과월호 보기 박시온 기자

12월 25일은 1년 중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날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오신 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기적이 일어난 그날처럼, 오늘도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꺼내준 사람들을 만났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김소영  
2006년 12월 24일 프랑스 파리. 거리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등은 기쁨 가득한 크리스마스와 꼭 안성맞춤일 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장소에 도착,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흔한 크리스마스트리, 밤거리를 수놓아야 할 조명들도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알고 보니, 무신론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는 그저 하나의 종교적 행사로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 무슬림들이 많아진 파리였다. 크리스마스 당일, 파리 시내의 개신교 교회를 찾고 또 찾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유명하다는 노트르담 사원에서 난생 처음 미사를 드렸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예식이 이어졌지만 내 마음은 얼마나 허전했는지 모른다. ‘이 도시에서 예수님은 어디 계신 것일까?’ 풍요롭고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예수님이 환영받지 못하는 도시 속 풍경이 안타깝고 씁쓸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기쁨과 낭만에 대해서 묵상하게 된 그날이었다.

 

 

찬양의 밤을 준비하며  조미라 
어릴적 교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찬양의 밤을 앞두고 무척이나 눈이 많이 내렸다.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해 워십 댄스를 준비했던 우리는 그 전날까지 의상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옷감을 구하기 위해 시내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버스가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는 돈이 없어 택시를 타지 못하고, 눈보라를 맞으며 시내까지 1시간가량 걷고 또 걸었다. 한 명이 미끄러져 넘어지면 다른 한 명이 웃다가 넘어지고, 아프면서도 정말 즐거웠다. 그렇게 도착한 가게에서 원했던 옷감을 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교회에 되돌아오자 그제야 추위로 꽁꽁 얼어 버린 손과 발이 느껴졌다. 난롯가에 모여 앉아 의상을 만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간지럽게 녹아내렸다. 찬양의 밤,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워십 댄스를 통해 예배를 드렸다. 안식처인 하나님 품 안에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렸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가족들도 그날은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우리가 준비하고 드린 것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셨다.

 

 

새벽송의 추억  박태준 
늦은 밤, 아이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새벽송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설렌 아이들은 교회 봉고차에 올라타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새벽송을 연습하기도 했다. 성도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면, 8명씩 한 조를 이루어 흩어졌다. 우리 조도 촛불을 켜고 문 앞에서 새벽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옆집 사람들까지 문을 열고 구경을 했다. 우리는 노래를 마치고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절 되세요!”라고 큰 소리로 축복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짜증 낼 만도 한데 옆집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해 주니 기뻤다. “기다리고 있다가 깜빡 졸았어요.” 성도님들은 환하게 웃으며 미리 준비해 놓은 과자 등 간식을 자루에 담아 주셨다. 무엇보다 백미는 라면이었다. 좁은 집에 사셨던 한 집사님은 “추운 날씨에 고생하네.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고 가요”라며 우리를 붙잡으셨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돌다가 새벽 4시가 됐다.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다가 교회로 돌아왔다. 전도사님이 끓여 주신 떡국을 세 그릇씩 먹으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며 서로 용납했던 시절, 그 웃음소리가 지워지지 않는다.

 

 

Why not change the world?  강현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그해의 크리스마스가 기억난다. 그동안 너무 익숙했던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 산타클로스가 준다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낯설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를 하나의 놀이 문화 정도로 취급하는 세상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었던 나를 되돌아봤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 말씀이 마음에 절절히 와 닿았다. 예수님의 상하심으로 내가 나음을 받았다는 것을 묵상하며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축제로 보내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축하해야 할 일인지 충분히 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의 근본이 잘못되어 버린 현실이 슬펐다. 시내 곳곳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아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교회로 향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성도들, 어린아이들이 준비한 귀여운 율동과 찬양 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Why not change the world?”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 세상의 문화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