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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독자의견2]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과월호 보기 여경구 성도(인천시 부평구)

저는 이제 대학 새내기로서 신학교에 입학한 평범한 학생입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온 첫날 아주 부끄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신학과 선배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교문을 나설 때, 교문 앞에서 어떤 불쌍한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 앞을 매정하게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참 자주 만납니다. 학교는 서울에 있지만 집이 인천에 있다 보니 학교를 왕래할 때마다 하루에 약 3시간 이상을 전철에서 보냅니다. 그 안에서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지체가 있는 장애인들이 구걸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부끄럽지만 저도 묵념-사실은 외면-에 동참하곤 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던 날에도 저는 똑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저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몸 바치기로 약속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왜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형제로 삼으셨던 주님의 헌신의 자세를 본받아 주님의 형제들을 돌보지 않고 외면하는 것인가? 그래도 나는 신학생인데….’
그런 신학생의 하찮은 자긍심이 발동한 탓일까요? 저는 그날 하루 종일 학교 앞 걸인을 지나쳤던 것이 신경 쓰이고 찜찜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이 저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지나갔느냐?”라고 저를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로 전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지날 때 걸인들과 마주치면 마치 주님을 대하듯이 마음 아파하며 지갑을 열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도 결국 가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자제품을 사러 가기 위해 5만 5천원가량을 들고 전철을 탔습니다. 사실 그 전자제품의 가격은 5만원이었고 5천원은 여유로 가지고 있던 돈이었는데, 때마침 전철에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형제가 타더니 구걸을 하기에 그 5천원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그날 저를 시험하기로 작정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다음 칸으로 옮겨 가자마자 아뿔싸! 이번엔 한쪽 팔이 잘린 외국인 노동자가 전철에 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도와줘야 하나…. 아, 그러면 전자제품을 포기해야 하는데….’ 결국 저는 예전의 부끄러웠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날 전자제품을 들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직도 제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주님께 전부 내어 드리지 못한 저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항상 자신을 버리고 제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기를 간구했던 저로선 정말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섬기고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리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요즘 크리스천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진정한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바깥에서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은 돌보지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멀쩡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헌신입니까? 차마 그것이 헌신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정말로 원하시는 헌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