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대만 목사 (Youth&Community Ministry)
남중·남고를 졸업한 저는 십대 때 여학생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교회에는 또래 여학생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신앙 생활을 해 온 친구들이라 이성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편한 사이였죠.
금사빠
제가 입학한 대학은 규모가 작아서 다른 학과 여학생들과도 자주 마주쳤어요. 하루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학교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학교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눴던 같은 학번 여학생이 그 버스에 오르더니 제 옆자리에 앉는 거예요. 제가 “안녕!” 하고 인사하자 “어, 대만아”라며 제 이름을 불러 주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가 제 이름을 부르자 저는 꽃이 됐고, 그만 그 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날 하루 종일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라고 말했고, 무슨 일인지를 묻는 친구들에게 “내 이름을 불러 줬거든”이라고 대답했다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죠. 물론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요. 그녀와는 좋은 친구가 돼 대학 생활 내내 잘 지냈지요.
감정을 처리하는 일
오래된 영화 ‘몽정기’는 사춘기 남학생들의 애환과 고뇌를 다룬 성장 드라마예요. 길거리를 지나는 예쁜 외모의 여자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을 보거나, 심지어 성관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보기만 해도 성욕을 느끼는 남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과장된 장면들조차 영화를 본 남학생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영화예요.
청소년 시절, 음란한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게 매일의 기도제목이던 때가 있었어요. 사랑인지 음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 때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찾아 행동으로 옮기곤 했어요. 일부러 안경을 벗고 걷기도 하고, 2~3분 동안 눈을 감고 있기도 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감정은 그만큼 강렬했고, 그 감정을 처리하는 일은 그보다 더 간절했거든요. 자연스러운 감정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까 봐 이처럼 전전긍긍했던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거룩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게 제 가장 큰 관심거리였기 때문이에요.
감정은 고백하는 것
내 이름을 불러 줬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졌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던 ‘나’와 음욕을 품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감고 다닌 ‘나’는 같은 사람이었어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거죠. 감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나아가 감정은 자연스럽고 소중한 것이며, 그래서 더욱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고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달에 소개할 필립 스위하트의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는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감정’에 대해 다룬 탁월한 책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서적 성장을 위한 기본서’라는 소개말이 딱 맞는 책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감정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어요. 또한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피조물도 인간이 유일하죠. 저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감정을 억압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감정을 무분별하게 표출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해요. 감정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말고, 내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고백’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해요. 하나님께 고백하며 말씀드리는 것이죠. 자신의 감정을 성령께서 알려 주시고 고백하게 하실 때, 비로소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