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대만 목사 (Youth&Community Ministry)
몇 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한 한 드라마가 있었어요. 법학 대학 교수인 아버지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피라미드 모형을 보여 주며, 상층부에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해요. 이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해요. “지구는 둥근데, 왜 세상이 피라미드야!” 이 드라마의 명장면이자 명대사 중 하나였어요.
뾰족한 피라미드 vs 둥근 원
이 고등학생의 외침에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피라미드로 비유되는 세상은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그 폭이 줄어들어요. 가장 높은 자리에는 단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죠. 그 한 사람은 모든 이를 자신의 발아래 두고 절대 권력을 행사해요.
그에 반해 ‘원’(circle)은 존재 양식이 피라미드와는 완전히 달라요. 원은 중심에서 일정한 거리에 떨어진 모든 점을 연결하는 도형이에요. 모든 점은 중심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원’은 모두가 동일한 힘을 갖는 평등한 세상을 상징해요. 삶의 기준이 원이냐 피라미드냐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는 완전히 다르죠.
희망으로 살아가는 혁명 이야기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동화처럼 그림과 함께 술술 읽히는 책이에요. 주인공인 호랑 애벌레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잎사귀를 먹으며 자라나요. 그러던 어느 날, 호랑 애벌레는 뭔가 다른 삶을 기대하게 돼요. 그리고 운명적으로 애벌레들이 떼를 지어 오르는 크고 높은 기둥을 발견해요. 그 기둥에 오르면 뭔가 더 나은 삶이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 호랑 애벌레는 다른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는 행동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내 옆의 애벌레는 위협적인 존재이고 장애물일 뿐 친구일 수는 없었죠. 그렇게 호랑 애벌레는 기둥을 오르다 노랑 애벌레를 만나요. 노랑 애벌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멈춰요. 끝까지 올라가는 게 결코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두 애벌레는 경쟁에서 물러나 땅으로 내려와 서로를 안아 주며 행복을 누려요.
하지만 호랑 애벌레는 다시 기둥으로 돌아가요. 그 끝이 너무 궁금했던 거예요. 노랑 애벌레는 그를 말릴 수 없었어요. 호랑 애벌레는 기둥 꼭대기에 올라선 끝에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해요. 그리고 아름다운 나비가 기둥 꼭대기를 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본 후, 기둥에서 스스로 내려와요. 그리고 다른 애벌레들을 향해 “우리는 날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외쳐요. 하지만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이웃의 머리를 밟는 수많은 애벌레들은 호랑 애벌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요.
보다 나은 삶을 꿈꾸기
“나는 나비를 봤어. 삶에는 뭔가 보다 나은 것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의 도움을 받아 호랑나비로 변해요. 이 이야기는 땅으로 내려온 많은 애벌레가 나비가 돼, 세상을 아름답게 채우는 것으로 끝을 맺어요.
무한 경쟁 속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웃의 머리를 밟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아니에요. 서로 사랑하는 세상에서 모두 다 각자의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에요.
저자는 이 책을 “삶과 진정한 혁명,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해요. 죽음을 의미하는 번데기가 부활을 상징하는 나비로 변하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백성의 삶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친구들이 바로 그 나비 같은 그리스도인이 돼, 세상의 꽃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