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대만 목사 (WE’ Ministry)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저는 이른 바 ‘문학 소년’이었어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매일 근처 대형 서점을 찾아 두세 시간씩 책을 읽곤 했죠. 그때 하굣길에 처음 서점을 찾았던 이유는 <꽃>이라는 시 때문이었습니다.
내 이름이 불린 순간 나는 변했네
저는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 지리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은 수업 내용을 칠판 한가득 쓰다가도 큰 소리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뒤를 돌아보곤 하셨죠.
3월 말의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은 학생들을 등지고 칠판에 세계 지도를 그리셨어요. 그러다가 정말 뜬금없이 제 이름을 부르며 뒤를 돌아보셨어요. 이름을 들은 저는 손을 번쩍 들었고, 눈을 마주친 선생님은 말없이 살며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떡이시더니 칠판 위에 지도 그림을 마저 완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제 이름이 불린 순간, 선생님이 나를 다 알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굉장히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 이름을 불린 그날부터 저는 선생님이 참 좋았고, 한국 지리 수업에 재미있게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변화였어요.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저는 우리 반에서 세계 지도를 가장 잘 그리는 학생이 됐죠.
시(詩)는 내 삶에 있었네
그 후 2학년이 되어 문학 수업 시간에 알게 된 시(詩)가 김춘수의 <꽃>이었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이름, 이름을 부르는 사람, 이름이 불리는 꽃, 의미, 존재 등과 같은 <꽃>에 대한 문학 선생님의 설명은 고2 남학생에게는 한없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시가 친숙하게 다가온 이유는 한국 지리 수업 시간에 겪은 제 경험과 꼭 닮았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시인의 시(詩) 속에서 발견하고 보니, 시(詩)라는 장르가 정말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 두세 시간씩 서점 한쪽에 앉아 시와 소설을 읽다가 그 감격을 안고 집까지 먼 거리를 걸어오곤 했어요.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렇게 시에 빠져들다가 만나게 된 시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序詩)였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감수성 짙던 그리스도인 문학 소년에게 ‘죄’는 아주 심각한 골칫거리였어요. 지나가는 여자를 보며 음란한 마음이 든다고 안경을 벗고 다니기도 하고, 급기야 두 눈을 모두 감고 다니던 무모한 남자 청소년에게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마음에 충격을 줬죠. 시인 윤동주의 고민은 나의 고민 같았고, 큰 영감을 줬어요. 특히 시의 첫 두 행이 제게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새롭게 다가왔죠.
그날 이후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더 치열하게 살았어요. 윤동주의 시(詩) 를 통해 2017년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 청소년 여러분 또한 삶을 더욱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라요.Q